박선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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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가 누가 처음 달을 봤을까, 강의 달은 언제 처음 사람을 비췄을까."(江畔何人初見月, 江月何年初照人)

장약허(張若虛;660~720)의 시 '달빛 강가에 꽃 피고'(春江花月夜)다. 누군가는 이 땅에 무엇이든 처음 경험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기존의 금기를 깨고 맞는 첫 경험, 새로운 변화, 소위 '혁신'이다. 이 혁신의 순간을 이리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역시 시인이다. 시인의 눈이기에, 마음이기에 깨짐의 아픔이 깨어남의 희열로 승화하는 것이리라.

" XXX, 잘 준비하면 '별의 순간'을 잡을 수 있다." "XXX의 '별의 순간'은 이미 지난 듯하다." '별의 순간', 앞서 세 명의 대통령 탄생을 도왔다는 노정객 김종인 씨가 쓰면서 관심을 모으는 말이다. 듣다보면, 김 전 위원장은 '별의 순간'이란 말을 "대권의 승기를 잡다" 혹 "대권의 명분을 잡다" 등의 의미 정도로 쓰는 듯 싶다.

김 전 위원장은 일찌감치 이 단어를 썼다. "인간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역사에서 하나의 '별의 순간'이 있고 정운찬이라는 개인에게 그 순간이 도래했다. 그 '별의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치면 역사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 (…)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절대적인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내 몸 상처 입을까 재는 사람은 안 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확신을 갖고 정치에 덤벼들어야 한다."

지난 2016년 신동아 4월호에 실린 '권력 추구하되 탐하지 않는다' 기사의 일부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의 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것을 계기로 김 전 위원장의 인물됨을 살피는 내용이다.

'추구하되 탐하지 않는다' 마치 '불위이치'(不爲而治:사심없이 다스린다)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지만, 어찌 현대 정치에 사심이 없을 수 있을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김 전 위원장은 그렇게 현 문재인 대통령의 별의 순간을 만들었다.

유럽에서 '별의 순간'은 동양에서 '장약허의 달'처럼 문명사에 대단히 상징적인 단어다. 금기를 깬, 혁신에 성공한 이가 느끼는 지극한 행복의 순간을 말한다. 존 밀턴에 따르면 그 별의 순간을 인류 처음으로 경험한 이가 바로 이브다. 그는 '실락원'에서 이브의 별의 순간을 잘 묘사하고 있다. 악마의 꾀임에 빠진 이브가 "그 과일은 먹지 말라"는 신의 말을 어기고 금단의 사과를 먹은 뒤 말한다. "너무나 좋았어요. 별을 보고 왔지요."

신학자, 전통의 입장에서 이브의 '별의 순간'은 낙원의 상실이다. 하지만 신학과 왕정에 맞선 유럽 계몽주의자들에게는 이브의 '별의 순간'은 인류사의 시작이었다. 금기를 깨는 기쁨의 순간이요, 혁명이고 혁신의 순간이었다. 장약허의 시처럼 인류를 처음 비춘 달빛이었다.

독일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에게 와서 '별의 순간'은 더욱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게 된다. 츠바이크가 인류 역사를 바꾼 인물들의 우연한 순간들, 즉 '인류의 별의 순간들'(Sternstunden der Menschheit)을 이야기하면서 금단을 깨는 상징적 의미가 좀 더 희미해지고 그저 한 인간의 '행운의 순간' '운명의 순간'이란 뜻이 강조된다.

그래도 츠바이크의 별의 순간은 여전히 인류의 역사 속에서 조명된다. 아쉬운 건 2021년 우리 사회에 쓰이는 별의 순간이다. 역사, 금기 등과 거리가 먼 "대통령이 되는 명운을 잡으라"는 노 정치인의 역술적 주문(呪文)처럼 쓰이고 있다. 그 주문에는 인류의 역사는커녕, 한 시대, 한 나라의 역사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고찰도 전무해 보인다. 우리의 이 시대가, 우리의 이 역사가 어떤 대통령을 필요로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이다.

결국 기쁜 건 대통령이 된 개인이요, 괴로운 건 나라의 백성이다. 어지러운 건 그 나라의 역사일 뿐이다. 이렇게 주술에 걸린 듯 대통령이 되니, 어찌 그 끝이 좋을 수 있을까. 그가 일조했다는 대통령들의 말로가 영어(囹圄)의 몸인 게 새삼스럽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의 '별의 순간'이라면 이브의 사과, 장약허의 달빛 정도는 아니라 해도 한 시대의 깨짐에 대한 아픔과 깨어남의 희열에 대한 깊고 깊은 숙려가 있어야 한다.

이 순간 스스로 별의 순간을 맞았는지 점치는 이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님아, 깨어지는 것을 먼저 보소. 달라질 역사를 먼저 보소. 아니라면 그 별의 순간을 잡지 마소. 그냥 그대로 사소. 님을 위해, 더욱더 이 나라를 위해서 …."

박선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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