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근목피, 보릿고개가 다 옛말이 됐지만 1945년 해방과 이어 대한민국이 개국되기 전까지 기근은 5000년 역사의 질곡이었다. 특히 엄격한 신분질서 속에서 지도층은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만 매달리고 굶주리는 수많은 백성들을 외면했다. 아사(餓死)는 면했지만 현재도 사회지도층의 기득권 지키기는 더 야박해지고 빈부격차와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결국 예나지금이나 백성(국민)만 불쌍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경목 교수의 신간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펴냄) 에는 조선시대 백성의 기근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서간문을 분석한 책은 공식 문서에 나오지 않는 서민 삶의 진상을 과감없이 드러낸다.

1668년 평안도 귀성부사 허흥선은 황해도 평산부사 김명열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령으로서 느끼는 안타까운 심정을 이같이 토로했다. "큰 흉년을 만나서 진휼 때문에 오랫동안 굶주린 백성들을 대하느라 죽을 고생을 하나 백성이 불쌍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조선은 이 무렵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김명열은 1671년 5월에도 "구휼 후 겨우 살아남은 백성이 또다시 보리 흉작의 재앙을 만났는데 구제할 곡식이 없습니다. 죽어 가는 것을 그 자리에서 보니 근심이 끝없고,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라는 문장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 책에 등장하는 편지 중 상당수는 1613년 태어나 1651년 문과에 급제한 양반 김명열이 쓰거나 받은 것인데,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배어있다.

상황이 이러 함에도 당시 김명열에게 청탁을 하는 무리도 있었던 모양이다. 성후룡이라는 자는 김명열에게 자신이 타던 말을 잠시 길러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백성은 굶어 죽어가는데 자신의 말 걱정을 하는 무개념이 드러난다. 서민 삶의 실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최저임금을 올리고 주52시간근무제를 도입하면 서민의 삶이 나아질 것이란 단순무식한 사고를 하는 현대의 위정자들도 성후룡과 진배 없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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