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모뎀칩 퀄컴에서 자체칩 전환 자체개발 M1 내놓으며 인텔과도 결별 팬덤·자금력 활용 반도체·자동차 확장
애플 M1 칩 <출처:애플>
아이폰 모뎀칩 퀄컴칩에서 2023년까지 자체 칩으로 전환 추진
자체 개발 M1 칩 내놓으며 15년간 협력해온 인텔과도 결별 수순
10억명 넘는 '팬덤'과 자금력 활용해 반도체·자동차로 영토 확장
세계 최대 통신용 반도체 제조사 퀄컴이 결별을 준비하는 애플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애플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폰에 모두 통신칩을 공급하면서 이동통신 산업계 공룡으로 성장한 퀄컴이 애플 아이폰 생태계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것.
반도체 시장의 강자 인텔도 비슷한 처지다. 애플이 15년 넘는 인텔과의 밀월관계를 깨고, 작년 자체 개발한 컴퓨터용 프로세서 'M1 칩'을 내놓은 것. 이 칩은 53년 역사의 반도체 기업 인텔의 멱살을 잡을 정도로 괴물 같은 성능을 보이면서 업계에서 "인텔보다 애플의 반도체 실력이 낫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애플은 2022년까지 인텔 CPU(중앙처리장치)를 자체 칩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한번 제품을 내놓으면 전체 산업구도를 뒤집는 위력을 발휘해온 애플이 모바일 기기에 이어 반도체 산업에 거센 폭풍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는 애플의 독자 반도체 칩 전략은 자율주행자동차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강력한 소프트웨어와 디자인으로 경쟁기업이 넘보기 힘든 제국을 세우고 10억명이 넘는 팬덤을 보유한 세계 시가총액 1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기업이 반도체 산업까지 집어삼키며 '모바일'에 이어 '모빌리티' 생태계까지 집어삼키려 한다는 것.
◇애플 펀치에 '녹다운' 당한 퀄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뉴욕증시. 퀄컴 주가가 전날의 양호한 2분기(1~3월) 실적발표와 낙관적인 3분기 실적전망에 힘입어 4% 이상 급등했다. 2분기에 79억4000만달러(약 8조9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퀄컴은 3분기에도 매출 71억~79억달러로, 주당 순익 1.55~1.75달러의 양호한 실적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퀄컴 측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세계가 점차 일상을 되찾으면서 스마트폰 수요가 다시 급증하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이 점점 5G 스마트폰을 더 많이 선택하고, 사물인터넷 기기 수요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과 열흘 남짓 지난 이달 10일. 퀄컴 주가는 하루 만에 6.46%나 급락했다. 올해 들어 두자릿수까지 주가가 떨어지다 겨우 상승세로 돌리는 듯하던 퀄컴의 덜미를 잡은 것은 애플이었다.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의 유명 애널리스트 궈밍치가 9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애플이 2023년부터 아이폰에 퀄컴칩 대신 독자 설계한 5G 모뎀칩을 탑재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 모뎀칩은 모바일 기기에서 음성·데이터를 송수신하는 데 필요한 핵심 칩이다.
궈밍치는 "애플향 매출이 감소하면 퀄컴이 저가 시장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脫퀄컴' 속도 내는 애플
애플의 '탈퀄컴' 행보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게 이번 충격의 이유다.
애플은 2016년부터 아이폰에 인텔 모뎀칩을 일부 채택한 데 이어 2018년부터는 인텔 모뎀칩만 썼다. 그러면서 퀄컴이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과도한 로열티를 부과했다며 2017년 최대 270억달러(약 30조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퀄컴이 애플에 맞소송을 제기하면서 공방이 커졌다.
애플은 그러면서 인텔과 손잡고 5G 모뎀칩 개발에 도전했다. 그러나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모뎀칩을 공급받을 대안이 사라진 애플은 2019년 4월 퀄컴과의 법적 분쟁을 포기하고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퀄컴 칩을 계속 공급받는 것을 조건으로 퀄컴에 최소 45억~47억달러, 우리 돈으로 5조원 넘는 합의금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휴대폰 두뇌부터 심장까지 손 안에
자존심을 구긴 애플은 그러나 독자 모뎀칩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5G 모뎀칩 개발을 포기한 인텔에 약 10억달러를 주고 인텔이 보유한 수천건의 모뎀칩 특허와 관련 인력 2000명을 인수했다. 퀄컴 본사가 있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관련 인력을 채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퀄컴과는 한시적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폰12 시리즈에는 퀄컴 '스냅드래곤X55'가 탑재됐고, 올해 출시될 아이폰13에는 '스냅드래곤X60', 내년 나올 아이폰에는 '스냅드래곤X65'가 적용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인텔도 실패한 모뎀칩 개발에 애플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내놓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러나 애플은 컴퓨터용 프로세서 M1에서 반도체 전문기업 뺨 치는 실력을 증명했다. 내년 하반기 독일 뮌헨에 반도체 R&D센터를 설립하고, 향후 3년간 1조원 이상을 투자해 모뎀칩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애플이 모뎀칩 독립에 성공하면 퀄컴이 받는 충격은 인텔보다 더 클 전망이다. PC나 스마트패드 시장에서의 애플 위상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위치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수년간 공들인 모뎀칩 독자 개발에 성공할 경우 애플은 휴대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전체 생태계를 거머쥘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칩보다 한 수 위" 평가받는 애플칩 퀄컴이 미래의 일로 충격에 휩싸였다면 인텔에는 이미 눈앞의 일로 닥쳤다. 인텔이 반도체 미세화 공정과 기술혁신에서 주춤거리는 사이에 애플은 지난해 ARM 디자인 기반으로 자체 개발한 PC용 프로세서 'M1 칩'을 내놓으면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M1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애플이 투자자금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야심작이다. 결과물은 기존 반도체 업계를 뒤흔들고 반도체 기업들의 자존심을 긁을 정도로 파괴적이다.
CPU와 GPU(그래픽처리장치), 뉴럴엔진 코어에다 메모리까지 단일 칩 안에 통합한 게 특징이다. 여기에다 메모리까지 통합해 처리성능을 크게 높이면서 전력소모는 대폭 줄였다. M1 칩은 최신 반도체 제조공정인 5나노미터 공정을 채택하고, 160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했다. CPU 코어와 GPU 코어, 신경망 처리를 담당하는 뉴럴엔진 코어까지 단일 칩 안에 담아 작업의 종류에 따라 최적의 리소스를 활용하도록 디자인됐다. 특히 성능이 높아지면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는 종전의 고정관념을 ARM 반도체의 저전력 특성과 새로운 칩 디자인을 통해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년간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축적한 칩 설계 기술력을 녹여 넣은 결정판이라는 게 애플 측의 설명이다.
M1 칩을 탑재한 신형 맥북에어는 성능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 인텔 칩을 뛰어넘는 탁월한 연산 성능을 보여줘 업계를 놀라게 했다. 전문가들은 CPU와 GPU 코어, 신경망 코어에 캐시 메모리, D램까지 집적해 시스템온칩 형태로 개발한 것이 M1 칩의 고성능 저전력을 구현한 비결이라고 분석한다.
애플 전문 매체인 맥루머스닷컴은 "M1 칩은 모든 요소에서 극한의 최적화를 이뤘다. 성능 면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컴퓨팅 기기"라는 평가를 내놨다.
◇IBM→인텔→독자칩…애플의 반도체 행보
팀 쿡 애플 CEO는 작년 6월 개최한 애플개발자회의(WWDC 2020)에서 ARM 기반 자체 프로세서 전략을 발표했다. 지난 1994년 모토로라 프로세서에서 IBM 파워PC 프로세서로 전환한 데 이어 2005년 인텔 x86 프로세서로 교체한 데 이어 또 한번의 전략 선회를 선언한 것.
독자칩 개발은 단순히 인텔 반도체로부터의 독립만 의미하지 않는다. 반도체까지 내재화함으로써 노트북과 태블릿 PC, 스마트폰을 아우르는 통합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완성하고, 기기의 종류에 상관 없이 통일된 사용자 경험과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전략이 숨어 있다.
애플은 이를 위해 ARM 기반 프로세서에 최적화된 맥OS '빅 서어'를 개발하고 주요 애플리케이션도 ARM 프로세서용으로 변환했다. 또 이용자들이 인텔 칩에서 ARM 프로세서로 불편 없이 넘어갈 수 있도록 에뮬레이션 소프트웨어 '로제타2'를 지원한다.
M1 칩을 통해 CPU부터 운영체제, 애플케이션까지 전체 요소를 수직 계열화함으로써 아이폰 등 모바일 기기에서 만들어낸 압도적 생태계를 PC와 노트북, 태블릿 PC 시장까지 확장한다는 게 애플의 야심이다.
◇M2 연내 양산, 자율주행차 시장 노크…애플 제국 더 키운다
애플은 M1에 이어 차세대 칩인 M2 프로세서도 양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M2 칩을 탑재한 제품들은 하반기에 선보일 전망이다.
M2 칩은 M1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외부 연결 인터페이스를 보강하고 CPU와 GPU 코어를 늘려 성능을 향상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아이맥 프로, 맥북프로, 맥프로 등 고성능 컴퓨터에도 탑재하겠다는 전략이다. 목표는 인텔 칩을 탑재한 고성능 PC 성능을 앞서는 것이다. 이 경우 인텔칩이 호령했던 PC 산업 생태계에 애플발 변화가 휘몰아칠 가능성이 크다. 애플의 목표는 내년까지 인텔 칩을 자체 칩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IT분야 한 전문가는 "애플은 자체 칩을 통해 노트북, 태블릿 PC, 스마트폰 간의 사용자 경험과 생태계 통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결국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데이터의 통합으로 이어지면서 애플 제국을 더 강력하게 만들 전망"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전문가는 "애플은 기존 모바일·PC 생태계를 통합하는 데 이어 자율주행차 시장에 뛰어들어 모빌리티까지 영토 확장을 추진 중"이라면서 "스마트폰에서 이뤄낸 성과를 전체 디지털 산업으로 넓히겠다는 야심을 이루는 핵심 무기가 바로 반도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