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에도 의혈 투쟁 등에 연루되지 않은 좌익 사범들은 대개 7~8년 이상의 형기를 살지 않았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페이스북>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9년형을 선고받은 이석기 전 국회의원과 관련해 "이게 악몽인지 현실인지, 답이 없다"고 분개했다.
12일 박노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악법, 국가보안법 피해의 상징이 된 이석기 전 의원을 감옥에서 면회하러, 저는 지난주 금요일에 대전에 다녀왔습니다"라며 "KTX는 사람들로 붐볐고 옆자리에서 정치적인 토론이 벌어져 대통령에 대해 할 말, 못할 말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민주화된 나라의 정상적 모습이었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박 교수는 "이런 상황 속에서 '90분 연설'로 감옥에서 이미 거의 9년째 살고 있는 분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초현실적이었습니다"라며 "'초현실'이라는 것은 저와 이 전 의원 사이 대화의 주된 코드였습니다. 지난 번에 동생의 석방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셨다가 결국 그 스트레스로 발병돼 68세의 나이로 요절하신 누님의 장례식에서 참석하려 이 전 의원은 잠깐 밖에 나가는 걸 허락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이석기 전 의원과의 인연을 언급했다.
그는 "바깥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와 감옥에서 면벽 명상만 주로 해야 할 때의 그 천양지차, 이 전 의원은 이를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고 표현했습니다"라며 "장주가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지금 장주가 됐다는 꿈을 꾸는 것인지 결국 알 수 없다고 느낀 것이지 않습니까? 이 전 의원은 옥살이가 악몽인지 방금 옥 밖의 세상을 본 게 길몽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저도 헷갈리죠. 지금 도대체 어느 시대인지 헷갈립니다. 1934년, 기록적인 조선 공산주의자의 재판에는, 병보석 상태에서 국외로 도주한 조선 공산당의 사실상의 영수인 박헌영은 6년형을 받았습니다"라며 "미결수로 보낸 시간까지 합산돼 1939년에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식민지 시기에는, 의혈 투쟁 등에 연루되지 않은 좌익 사범들은 대개 7-8년 이상의 형기를 살지 않았습니다. 악랄하고 잔혹한 일제 시절에도 그랬다는 것이죠. 도대체 이석기 전 의원이 받은 그 9년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라며 "이게 악몽인지, 현실인지, 답이 없습니다"라고 글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