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이게 전부 인프라다(It's all infrastructure)."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각) 백악관 반도체 회의에서 전략 자원 확보를 강조하며 언급한 이 문장은 기술 기반, 즉 인프라의 중요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인프라는 경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산업의 근간이다. 연구개발(R&D)과 산업 생산 활동에 필요한 고급 인력, 관련 노하우, 연구 장비와 시설 등을 말한다.

미국 백악관의 반도체 칩 부족 사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반도체 화상회의'는 반도체를 핵심 인프라로 지목하고 공격적 투자를 감행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고 기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는 짧은 기간 동안 기술 인력을 대량으로 공급하고 연구개발 기반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리나라 역시 기술강국, '기술 금수저 국가'가 되려면 기업의 기술개발 활동을 측면 지원하고, 이를 통해 기업 R&D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인프라가 전국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1994년 미국 대학 교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자마자 정부의 '산업기술하부구조 확충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당시 우리나라 산업 정책의 초점도 특정 업종 중심으로 육성하는 수직주의에서 기술 중심의 수평주의로 옮겨가던 시기였다. 그 결과로 탄생한 사업이 '산업기술 기반조성 사업'이다.

이 사업의 내용은 지역 테크노파크, 출연연구소, 대학에 연구개발 장비와 연구 시설 구축을 지원하는 것이다. 약 3조원을 투입하여 전국 900여 기관에 구축된 각종 장비와 시설은 지난 25년간 기업에 설계, 시험 평가, 시제품 제작 등 다양한 기술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특히 자체 혁신 역량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은 지역 내 연구기관의 도움을 받아 개발 기간 단축, 시험인증 비용 감소,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경북에 있는 자동차부품 기업 K사는 전문 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철도 차량의 핵심 부품인 코니컬 스프링을 자체 개발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부품을 국산화한 덕분에 지난해 80억 원 추가 매출도 달성했다.

박테리아 여과효율 시험법을 개량하여 평균 45일 걸리던 보건용 마스크 성능 시험검사 기간을 일주일로 단축시킨 것도 지역에 있는 연구기관의 공이 컸다. 또한 M사는 진단 시간을 단축한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개발해 식약처의 수출 허가까지 받아두고도 단백질 대량 생산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역 연구기관이 보유한 장비 덕분에 문제 없이 수출할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는 보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신산업 선점을 위해 미래차, 바이오, 반도체 분야의 기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지금까지 기본에 충실한 산업 일반 인프라 구축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정밀 타기팅한 고도화된 인프라를 까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기반 구축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리므로 사전 대응이 필수다.

아울러 산업 현장의 수요에 즉시 대응하는 범용성 기반구축을 강화해야 한다. 이미 구축해둔 기반을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이 여러 센터를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연구기관들의 장점을 서로 연계하여 통합된 기술지원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장비 통합관리기관으로 지정된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올해 인프라 구축의 전략성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민간 출신 산업기반PD를 영입했다. 중장기 관점에서 육성할 핵심 테마를 발굴하는 한편, 50개 핵심 품목 중심으로 기업에 당장 필요한 분석, 시험, 인증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구축도 준비할 계획이다.

약 26년 전 기업 지원 인프라의 시작을 함께 했고, 또 지금은 이 네트워크를 총괄 운영하는 기관의 장으로 있는 필자로서는 미래의 기술혁신 인프라 구축에 대해서도 묘한 기대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 기술 애로를 겪는 기업들을 위해 앞으로도 작은 힘을 보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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