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김아름 기자] 라면 시장에서 여름은 아주 독특한 계절이다. 모든 식품류가 계절 영향을 받지만 라면은 그 강도가 남다른 데다 강세를 보이는 기업까지 변한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만년 3위' 팔도가 라면 매대를 점령한다. 반면 국내 라면 시장의 압도적 1인자인 농심은 기를 펴지 못한다. '여름 라면' 시장을 지배하는 비빔면 때문이다.
비빔면 시장의 또다른 특징은 '싸다'는 것이다. 최근 라면 신제품의 '기준가'는 1500원이다. 실제 A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라면들의 가격을 살펴본 결과 1000원 미만 라면은 30종, 1500원 이상인 라면은 32종이었다.
그럼에도 비빔면은 여전히 '서민 가격'을 고수한다. 업계 1위 팔도의 팔도비빔면은 1봉에 600원 안팎(대형마트 기준)이면 구매할 수 있다. 1~2봉을 추가 증정하는 프로모션 기간에는 500원 아래로 떨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출시해 업계 2위로 떠오른 오뚜기 진비빔면도 개당 600원대를 지키고 있다.
프리미엄 라면 시장을 연 농심 역시 비빔면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출시한 신제품 비빔면 배홍동의 소비자가는 1050원. 하지만 농심은 최근 주요 채널에서 4개입 멀티팩을 2000원대에 판매하는 출혈 경쟁을 펼치고 있다.
비빔면 시장이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팔도비빔면 때문이다. 국물라면 1위인 신라면의 시장 점유율은 10%대 중후반. 하지만 팔도비빔면의 비빔면 시장 점유율은 60% 이상이다. 오뚜기와 농심, 삼양식품 등 경쟁사들도 1위가 아닌 2위를 노린다. 압도적 1위가 가격 기준을 세우면서 경쟁 브랜드들이 고가 전략을 내세우기 어려워진 것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 규모 역시 이유다. 국내 비빔면 시장 규모는 올해 1500억원 안팎으로 전망된다. 2조원을 웃도는 전체 라면 시장의 7% 수준이다. 다양한 제품이 생존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비빔면 자체의 특성이 '프리미엄화'를 어렵게 한다는 분석도 있다. 프리미엄 라면 시장의 포문을 연 농심 신라면 블랙의 경우 '우골분말스프'를 통해 프리미엄화를 이뤘다. 짜왕은 다시마를 섞은 굵은 면과 풍성한 건더기가 특징이었다. 국물과 면, 스프에 '프리미엄' 재료를 넣어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비빔면의 경우 소비자들이 얇은 면과 깔끔한 매운 맛을 원한다는 점, '계절 라면'이라는 특성 때문에 튀는 맛보다는 '아는 맛'을 선호한다는 점 때문에 고급화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 '굵은 면'을 내세워 마케팅 포인트를 파별화했던 농심 칼빔면은 출시 1년 만에 단종 수순을 밟았다. 프리미엄 라면 트렌드가 한창이던 2016년 삼양식품이 내놓은 '갓비빔' 역시 조용히 퇴장했다. 미역초무침을 넣어 건더기를 강화한 '미역 비빔면'도 시장에 반향을 이끌지 못하고 사라졌다.
반면 맛은 유지하되 양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았던 오뚜기 진비빔면은 단숨에 업계 2위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비빔면에서만큼은 '가성비'가 여전히 시장 트렌드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팔도가 비빔면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만큼 가격이나 맛 모두 팔도비빔면이 시장 기준이 되고 있다"며 "고가 전략을 가져가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말했다.
김아름기자 armijjang@dt.co.kr
비빔면 시장은 프리미엄 전략이 통하지 않는 시장으로 평가된다. 사진은 한 대형마트에서 비빔면을 구매하는 소비자. <농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