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
이충렬 지음 / 김영사 펴냄
전형필은 중추원 의관이었던 아버지 전영기의 둘째 아들로 1906년 태어났다. 집안은 지금의 종로4가인 배오개에서 가장 큰 상권을 가지고 있어 매우 부유했다. 전형필은 작은아버지의 양자가 됐지만 아흔아홉 칸 대저택에서 일가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친부모 밑에서 자랐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30년 24살 때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다. 요즘 시세로 6000억원이 넘는 재산이었다. 당시 전형필이 소유하게된 논만 해도 800만평(4만 마지기)이 넘었다고 한다. 이는 어린 전형필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규모였다. 고민하던 전형필은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을 만나면서 재산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해답을 얻게된다. 그는 온 재산을 털어서라도 일제가 빼앗으려는 문화유산을 조선 땅에서 지켜내고자 결심한다.
이 책은 조선 제일의 수장가이자 국내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삶과 문화재 수집 이야기를 담고있다. 전형필이 억만금의 재산을 바쳐 일본인의 손으로부터 민족의 얼이 깃든 문화재를 지켜내고, 이를 후대들이 볼 수 있도록 간송미술관을 짓기까지, 민족 문화재 지킴이로서 살았던 삶을 소개한다.
특히 책에는 전형필이 국보급 명품과 보물을 찾고 소장하기 위해 벌인 승부의 명장면들이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 나타났을때 숙고(熟考)는 했지만 장고(長考)는 하지 않았다. 가격도 따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런 문화재를 놓친 적이 거의 없었다. 고려청자 가운데 최고의 매병으로 꼽히는 국보 제68호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잠잘 때는 베개 속에 넣고 지켰다는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신윤복의 그림이 담겨있는 국보 제135호 '혜원전신첩' 등은 이렇게 해서 지켜낸 민족의 보물들이었다.
전형필은 개인적 치부가 아닌, 가치 있는 일에 재산을 사용하는 것이 부자의 진정한 소임이라고 깨달은 사람이었다. 그는 편안하고 유유자적 사는 대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모든 재산과 젊음을 바쳤다. 그는 한국의 미를 발굴하고 지킨 문화 독립운동가였고, 한 시대를 앞서 간 선각자였다. 그는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범이었다. 전형필의 삶은 '배우고 가진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을 준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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