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장담하던 '야권승리 목표' '아름다운 단일화' 간데 없이 약속 파기
2주 동안 상승세 노린 지연전술 편 국민의힘, 대의와 다른 민낯 드러낸 국민의당
선명성·차별화 경쟁 없이 단일화협상 진흙탕싸움만…선거 명분까지 묻혀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3월15일 서울 영등포 더플러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단일화 비전발표회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3월15일 서울 영등포 더플러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단일화 비전발표회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민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1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오세훈 후보가 요구한 단일화 방식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종인 위원장은 "너무 늦지 않게 응해줘 다행"이라고 했다. 18일까지 결렬로 갔던 단일화 절차가 다시 가동될지 주목된다.

국민의힘이 요구한 단일화 방식은 2개의 여론조사업체가 각각 '적합도'와 '경쟁력'을 1000명씩 물은 뒤 결과를 합산해 단일 후보를 가리는 방식이다. 이때 유선전화가 10% 정도 포함돼야 한다는 게 국민의힘 입장이었는데, 안철수 후보는 그 조건에 반대했다. 이날 이 조건까지 포함해 100% 국민의힘 방식을 수용한 것이다. 만일 국민의힘이 안 후보에 화답하면 이번 주말 여론조사를 하고 다음주 초에는 양당 단일 후보를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는 "이제 누가 유리하니 불리하니 그런 이야기 하지 말자"며 "야권 단일후보가 누가 되든 그 후보가 이기면 야권 모두가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늦지않게 응해줘서"라고 환영의 뜻을 비쳤다. 그러나 새로운 복병이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안철수 후보가 19일 국민의힘 방식을 수용하기 전까지 협상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원래 4·7 재보궐선거 후보등록 마감(19일) 전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를 확정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그간 과정은 일주일 전 정국에 파장을 일으킨 문재인 대통령의 SNS 표현을 빌리자면, '과정은 좀스러웠고 결과는 민망'했다. '후보가 되는 게 아니라 야권 승리가 목표' '아름다운 단일화'니 서로 장담해놓고 경선 유불리에만 혈안이 돼 소모적인 협상 시늉을 반복하다가 때를 놓쳤다.

국민의힘이 오세훈 후보 선출 이후 고작 2주밖에 안 되는 기간 보여준 '지연 전술'과 '이중 잣대'가 주요 원인이다. 당내 경선에선 무려 당원투표를 없애고 100% 시민여론조사로 후보를 뽑더니,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상대로는 "1000명 여론조사로 1000만 시민의 시장 후보를 뽑냐"며 "태극기부터 중도까지" 대규모 시민참여형 선거인단부터 요구했다.

오 후보는 선출 사흘 뒤(7일)에야 안 후보를 만났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나서야 여론조사 경선 논의로 슬그머니 돌아왔다. 그러나 남은 기간 TV토론 3회 이상을 요구하고, '단계적 협상'을 거론하는 등 타결과 거리를 뒀다. 오 후보가 안 후보의 지지율을 따라잡았거나, 넘어섰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될수록 더욱 대담해졌다. 협상 파트너를 "야권분열을 잉태할 후보"라고 지목하는가 하면, 여론조사 실시일로 약속한 17일까지도 '적합도냐 경쟁력이냐' 여론조사 문항을 놓고 옥신각신했다.

그러면서 유선전화 10%~20% 반영을 추가로 요구해 18일 오후 최종 협상까지 풀리지 않을 쟁점으로 남겼다. 여야 3자 대결을 "재앙"이라던 오 후보가 결렬 직후 방송 초청 토론회에서 "2~3일 내라도 단일화는 될 것"이라고 말할 땐 오히려 '여유'가 느껴졌다. 일련의 과정에서 당을 이끄는 비상대책위원장이 "떼 쓰는 인상" "정신이 이상" 등 단일화 파트너를 괄시하는 언사를 쏟아낸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듯했다. 단일화에서 패배한 후보의 지지자들을 껴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부적절하고 자해적인 언사다. 결과로 의도를 점쳐야 하는 여의도 정치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갈수록 유불리에 집착하며 '내가 단일후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중을 드러낸 안 후보도 책임이 적지 않다. 3월초 제3지대 1차 단일화 여세를 몰아 제1야당을 금방이라도 접수할 태세로 "신속하게" 절차를 밟자더니, 여론조사상 오 후보에 대한 압도적 우위가 흔들릴 때부터 '경쟁력 설문이 아니면 안 받겠다'는 벼랑 끝 전술을 취했다. '기호 2번 출마' 가능성을 두곤 "저보고 탈당하라는 거냐"면서 손사래를 치더니, 열흘 만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연계한 "더 큰 2번"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서울시장 당선 이후 양당 합당 추진"이라는 선언으로 반전을 꾀했지만 조건부였다. 이를 포함한 범(汎)야권통합 3단계를 천명했으나 윤 전 총장의 호응이 불투명한 채였다. 18일 여론조사업체 1곳씩 '적합도'와 '경쟁력'을 도맡아 조사한 뒤 합산하자는 오 후보의 공개제안 3시간여 만에 "저는 대의(大義)를 위해 수용하겠다"며 지푸라기를 잡았지만, 그 '대의'에서조차 유선전화 도입은 예외였다.

단일화 협상 이전투구가 보궐선거 정국의 '블랙홀'로 작용하는 동안 두 후보가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자임하며 치열하게 벌였어야 할 선명성 경쟁과 시정(市政) 바로잡기를 위한 차별화 경쟁 모두 실종됐다. 15일 비전발표회에서 단일화 협상, 발표내용에 없던 부동산 질의만 쏟아진 게 비단 언론 탓만은 아닐 것이다. 16일 TV토론에선 자칭 미래지향 후보가 '무상급식 프레임'으로 상대의 10년 전 과거 발목을 붙들거나, 상대 후보는 비위 의혹 결백 입증 수단으로 '직 사퇴'를 재론하는 비생산적 언행들이 이슈가 됐다.

여권발(發) 악재에 기댄 선거에서 이건 만용에 가까웠다. 상대적으로 야권을 지지하려던 유권자들도 3자 구도 불안감 속 '누가 덜 실망스러운지' 비관적인 선택을 강요받게 된 상황이었다. 국민의힘 경선 국면 당시 측면지원 의사도 보였던 진보진영 출신 반문(反文)성향 스피커들도 '냉대'로 돌아섰다.

국민의힘의 유선전화 도입 주장에 18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SNS에 "X소리"라며 "전화 없는 빈곤층 의견 반영하기 위해 가두방문도 넣지?"라고 비꼬았다. 최근 안 후보 지지로 선회한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도 "원하는 대로 다 양보해줬더니 뜬금없는 유선전화 10%를 들고 나와 기어이 결렬시킨다"고 질책했다.

한편 피해여성이 기자회견으로 거듭 '선거를 치르는 이유'와 '두려움'을 호소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 LH 사태를 계기로 터져 나온 지도층 공공개발 투기 반사이익도 좀스럽고 민망한 단일화 밀당에 묻히는 분위기다. 최근 남편 명의의 일본 도쿄 부동산을 유지한 채 서울시장 선거에 임해 '차가운 도쿄 여자'라는 빈축을 산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도 야권 단일화 진흙탕싸움은 '호재'로 작용한다.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 방식을 100% 수용한 이상 꺼져가던 단일화 불씨는 다시 켜졌다. 국민의힘이 조건으로 붙인 유선전화 10% 조사가 과연 얼마나 국민의힘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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