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역사
전우용 지음 / 푸른역사 펴냄


1955년 6월 장충단에 안중근 의사 동상 건립 터를 정하고 모금운동에 착수했다. 모금은 순조롭게 진행된 편이었으나 건립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항간에선 안중근 동상이 제때 세워지지 못하는 것이 이승만 동상을 먼저 세워야했기 때문이란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이승만 동상 제막식은 제11회 광복절이자 제3대 대통령 취임일인 1956년 8월 15일 날 거행되었다. 장소는 남산 옛 조선신궁 터였다.

본체 높이 7미터, 좌대 높이 18미터, 총 높이 25미터로 척수(尺數)로는 81척이었다. 80회 탄신을 기준으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동상 높이를 81척에 맞춘 것이었다. 건립비는 2억6000여만원에 달했다. 원조물자로 근근히 연명하는 '세계 최빈국' 한국에서 '세계 최대 규모'라는 찬사를 받는 동상이 세워진 것이다. 4년 뒤 4·19가 터지자 분노한 시민들이 남산 동상을 쓰러뜨리려 했으나 너무 커서 사람의 힘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었다. 결국 박정희 정권때 기계의 힘을 빌려 철거됐다. 백성들의 삶이 고달팠던 1950년대의 아스라한 추억이다. 1968년 서울시는 남산 동상이 서있던 자리에 분수대를 만들었다.

이 책은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라는 부제를 달고있다. 글은 모두 52꼭지다. 근대 한국인의 언어, 의식주, 직업, 경제생활, 정치, 가치관, 문화 등을 대주제로 갖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은 희미해진 연탄, 도장, 침모, 기생충 박멸, 소매치기에서부터 우리가 무심코 넘겼던 현모양처론, 접대문화의 기원까지 파고들어 우리가 몰랐던, 혹은 잊고 있었던 근현대사 이야기들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저 재미로만 읽기엔 아깝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보통사람이 역사가 되는 시간을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통사람에겐 보통사람의 역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류 역사의 본류는 사람의 시선을 끌지 않는 평범성"이라며 "현재의 자기 삶이 어떤 역사적 계기들에 의해 구성되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박영서 논설위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박영서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