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9월이면 국산 백신이 나올 것 같다."(2020년 7월 28일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 "연내 백신 개발과 보급을 장담하기 어렵다."(2021년 2월 17일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 "내년 초 국산 백신 접종이 가능할 것 같다."(2021년 2월 22일 과기정통부 출입기자 간담회)
국산 코로나 백신 개발 시기에 대한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말이다. 지난해만 해도 국산 백신이 올해 개발되고, 접종도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연초 들어 확 바뀌었다. 최 장관의 말대로라면 올해는 해외 백신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내년에도 국산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어 보인다. 그만큼 국산 백신 개발에 변수가 많고, 불확실성도 크다는 방증이다. 이 때문에 백신 개발 시기를 특정해 발언하는 자체가 자칫 국민들에게 변죽만 울리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백신 개발은 비임상, 임상1상, 2상, 3상 등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친다. 개발에만 최소 10년 이상 긴 기간이 걸리고, 개발 비용만 수 조원에 달할 뿐 아니라 성공 확률도 매우 낮다. 설령 개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감염병이 중간에 사라지면 그 백신은 쓸모없게 된다. 우리나라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백신 개발에 나섰다가 메르스 종식으로 개발이 중단된 경험이 있다.
이처럼 백신 개발은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신종 감염병이 생겨도 제약사들이 섣불리 뛰어들지 못하는 분야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지난해부터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이 거세지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백신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이들은 기업 명운과 자존심을 걸고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각국 정부는 전폭적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1년 만에 백신이 초고속으로 개발됐고, 드디어 지난해 말 영국 등 유럽과 미국을 시작으로 접종이 전 세계적으로 시작됐다. 우리도 뒤늦게나마 지난달 26일부터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백신 접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코로나 백신 허가를 받은 나라는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인도 등 5개국에 불과하다. 특히 전통적 제약강국인 독일, 스위스, 프랑스, 일본 등은 아직 백신 개발에 성공하지 못해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백신 개발이 결코 쉽지 않음을 다시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내년 국산 백신 접종 소식은 백신 기술주권 확보 차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국산 백신 개발 소식은 왜 이렇게 오락가락하고, 더디게 진행될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열악한 기초연구 환경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백신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를 해 본 경험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국산 백신 개발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일례로, 코로나 백신 중 미국에서 가장 빨리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미국 모더나의 mRNA 백신은 하룻밤 사이에 뚝딱 만들어진 게 결코 아니다. mRNA 기술은 1970년대 미국 MIT대 필 샤프 교수가 개발했다. 이후 연구자들이 효능과 안전한 백신 개발에 적용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일부 연구자들이 mRNA가 가진 잠재력을 믿고 연구를 지속한 결과, 2005년 미국 펜실베니아대 소속 과학자들에 의해 성공할 수 있었다. 이 같은 mRNA 기초연구 토대 위에서 모더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 염기서열이 공개된 이후 이틀 만에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백신 형태인 'mRNA 백신'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지난 40년 동안 축적해 온 mRNA 관련 기초연구 성과가 쌓여 코로나19 발병 이후 1년 만에 코로나 종식을 위한 백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우리나라는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민간의 혁신기술과 정부의 신속한 허가 덕분에 우수한 진단키트를 전 세계에 내놓으면서 'K-방역'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우리가 진단키트를 빠르게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2015년 메르스 확산 당시 진단키트 개발 경험과 학습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메르스 백신 개발은 메르스 종식과 함께 중단돼 경험과 역량을 축적할 수 없었다. 만약 메르스와 무관하게 백신 개발이 이어져 왔다면, 아마도 지금쯤 국산 코로나 백신 개발 소식과 함께 접종도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올리브 나무는 씨를 심으면 나무 자체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자라지만 열매를 맺기까진 수 년, 아니 수십 년이 걸린다. 올리브 나무에서 알찬 열매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 밖에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으로 이어질 것이고, 변이 바이러스도 계속해서 출현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 백신 개발은 올리브 나무에서 열매가 맺길 기다리는 것처럼 지속돼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