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부고를 띄울 일이 생겼다. 결혼 청첩이나 부고 등 경조사 고지는 일상적으로 많이 받아오고 있어서 부고장 작성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직접 부고장을 만들려다 보니 간단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유가족 이름을 넣을까, 유가족 이름에 손자녀들도 포함시킬까, 부의금을 송금할 수 있는 통장계좌 번호를 알릴까 등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또 한가지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은 부고를 보낼 대상 선정이었다. 살면서 학교, 회사와 각종 모임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맺고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 누구까지 부고를 할 것인가도 결정해야 할 일 중의 하나였다.
결국 '통장번호는 알리지 않는다'와 '부고를 하는 대상을 최소화한다'는 두가지 원칙을 나름대로 정해서 실천에 옮겼다. 여기에는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정치·사회· 경제·문화 할 것없이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도 당연히 고려했다. 특히 장례식, 결혼식 등 사람이 많이 모일 수 밖에 없는 장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감염 우려가 있어 유가족들은 지인들에게 장례식에 와달라고 청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고를 SNS를 통해 보낸 후에 발생했다. 많은 지인들부터 통장번호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장례식장이 내가 현재 생활하고 있는 수도권에서 제법 떨어진 지방이고, 당시 약간 소강상태이기는 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이 계속되는 상황을 감안해서 문상이 간단치 않음을 호소하며 부의금을 송금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요청을 받으면 "굳이 오실 필요는 없고, 그러한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으로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장에 누구를 대신해서 문상을 왔다고 하는 분이 계셨다. 사연을 들어보니 내 후배의 부탁을 받고 그의 숙부께서 조문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수도권에 사는 후배가 도저히 문상을 올 형편이 아니어서 장례식장 가까이 사시는 숙부께 대신 문상을 부탁했다는 거였다. 물론 그 후배는 나에게 통장번호를 알려 달라고 요청한 바가 있었다. 나는 내가 판단을 잘못해서 제대로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닥칠 때 주위에서 십시일반 상부상조하여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우리의 좋은 전통임에 틀림없다. 사적 모임이나 단체에서 구성원의 경조사 발생 시 품앗이 형태로 부조금을 주고 받는 전통이 꽤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톱니바퀴 돌듯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러한 전통이 꼭 계속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조사 통지 대상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평생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에게 지인이나 가족의 운명 소식을 꼭 알려야 할 필요가 과연 있는 것인가? 더구나 사업 관계로 알게 된 사이거나, 권력을 매개로 한 사이 즉, 상하관계 또는 발주처와 하도급 관계, 힘센 기관 종사자의 경조사 통지는 자제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경조사가 발생할 시, 친소 여부와 관계없이 가능한 많은 지인에게 부고장이나 청첩장을 보내는 것이나, 통장번호를 알리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자신의 경조사 시 '나'는 누구에게 알릴 것인가 그리고, 통장번호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도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종종 받고 있다. 친절하게 통장번호를 알려준 경우에는 마음 속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부조금을 송금하면 직접 찾아가는 수고를 면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더구나, 대면 모임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요즘 상황에서 부조금을 온라인으로 송금하는 것이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혼사에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의 법도이다(婚娶而論財, 夷虜之道也)." 명심보감에 나오는 구절이다. 혼인을 하는데 재물을 논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소시 적에 이 구절을 읽고 나름 느끼는 것이 있었다. 어디 혼사뿐이겠는가. 누구에게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이 있다. 퇴직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부조금이라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