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자기만족 이전에 소통하는 것 매번 똑같지 않지만 느낌상으로 해선 안돼 본질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중요
바이롤리니스트 김응수 카메라타 솔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
피카소의 그림을 본 적 있는지. 이쪽저쪽에서 뜯어본 피사체의 모습을 하나의 캔버스에 그려 넣어 '입체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평면의 회화지만, 그 입체성 덕에 본질은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인다. 김응수는 음악에 대한 관점도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음악을 더 풍성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음악가에게는 연주 생활을 지속할 버팀목이 된다. 그가 경험으로 체득한 진리다.
빈 국립음대와 그라츠 음대를 거쳐 하노버 음대에서 수학한 김응수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공연이 많은 해에는 3일에 한 번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음악은 청중에 따라, 함께하는 연주자에 따라 늘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변화 속에서도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풍성해졌다. 카메라타 솔은 더 다양한 음악으로 청중과 소통하기 위해 김응수가 꾸린 단체다. 작은 체임버 오케스트라 규모로, 2015년 첫 연주회를 열었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각자의 음악적 관점을 모으고 소통해 청중에게 새로운 음악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2월 카메라타 솔 리사이틀을 앞둔 김응수를 만나기 위해 그가 몸담고 있는 한양대 교정을 찾았다. 카메라타 솔 단원이자 제자들로 가득한 연구실은 분주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 카메라타 솔 제공
-2012년 한양대 교수로 부임했다. 그 후 3년이 흘렀을 때 카메라타 솔을 창단했다. 교육적인 목적에서 필요성을 느꼈나?
"우선 '창단'이라는 표현은 좀 거창하다. 카메라타 솔은 그것보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주위의 뜻이 맞는 연주자, 제자들과 모여 의기투합했다. 학생 때 무대에 많이 서봐야 하는데, 오디션이나 콩쿠르 외에 그럴 기회가 별로 없다. 내가 디딤돌이 되어 청중과 소통하는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한양대에 오고 3년 정도 지나고 나니, 졸업하는 제자가 생기더라. 이들과도 제자라기보단 동료 연주자로서 함께하고 있다."
-카메라타 솔은 한양대 출신이 주축이 된 단체로 알려져 있다.
"한양대에서 공부한 단원도 있긴 한데, 비율이 그리 높진 않다. 우리의 정체성은 음악이지, 어디 출신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떤 연주자들이 모여있나.
"평소에 음악적 교감이 있던 분에게 내가 먼저 같이하자고 제안한다. 왜, 괜히 나랑 잘 통할 것 같은 사람이 있지 않나. 자신과 다르지만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도 있고. 음악적 교감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본다. 기량이 좋은 연주자는 많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떤 음악적 가치관을 공유하느냐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기본적으론 체임버 오케스트라 정도 규모인데, 곡에 따라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진다. 음악적인 뜻을 함께하고 싶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있다."
-예술감독으로서 추구하는 카메라타 솔의 방향은 무엇인가.
"음악의 기본적인 속성은 자기만족이기 이전에 '소통'이다. 누군가에게 이러한 음악을 선물해주고 싶은 바람에 가깝다. 우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청중이 알고 있는 음악을 또 다른 관점에서 들려주는 것이다. 새롭고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때 음악이 더 풍성해진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음악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카메라타 솔은 확실히 젊은 단체다."
-2008년 첫 서울 공연을 앞두고도 한 인터뷰에서 "다양한 음악성을 인정하며 포용하는 분위기"를 강조했다. 음악에 있어 참 한결같다.
"나는 혼자 연습할 때도 두 명의 김응수가 있는 것처럼 속으로 대화해본다. "어떤 것 같아?" "이게 정말 맞아?" 하나의 생각이 아니라, 또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면 관점이 다양해지고, 알던 것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요즘 점점 획일적인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데, 음악만큼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반대로 단체를 이끌며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음악가는 무대 위에서는 아주 프로페셔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철저히 준비한 뒤에 관객과 만나야 한다. 나는 솔리스트로서 경력을 쌓았지, 오케스트라는 학생 때 말고 참여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건 내 몫이 아니라, 악장을 경험해본 연륜 있는 연주자가 맡는다. 카메라타 솔은 김응수 개인의 단체는 아니다. 나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로 가면서 더 좋은 앙상블 단체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 예술감독으로서 할 일은 그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카메라타 솔은 고전파 음악을 주로 연주했다. 2017년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시리즈를 진행했고, 2018년엔 하루 만에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 연주를 시도했다. 고전파 레퍼토리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
"앙상블의 근간이 되는 소리를 만들기에는 고전주의 작품이 좋다. 내가 생각하는 바로크 음악은 '이야기하는 음악'이고, 낭만주의 음악은 '노래하는 음악'이다. 고전주의 음악이 어려운 이유는 '노래'와 '이야기'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음악적으로는 '노래의 연극'이라는 뜻의 징슈필(Singspiel)이라는 장르가 있고, 모차르트의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이 대표적이다. 두 가지 다 잘 해내려면 많은 음악적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만의 소리를 만들 수 있다."
-어떤 연주자를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고 칭하듯이, 카메라타 솔을 대표하는 레퍼토리가 있을까?
"우리는 '음악'의 스페셜리스트다(웃음). 특정한 음악적 범주를 정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악역으로 유명한 연기자라고 해도, 선한 역할에 도전해야 연기의 범위가 넓어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의 캐릭터를 설명하자면 좀 극단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이든 확실하게 표현해서, 확실하게 청중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자기주장이 강한 음악을 하는 것 같다.
"어차피 음악은 시적인 속성이 있어서 아무리 극단적으로 표현해도 듣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작곡가의 철학이나 곡을 떠받치고 있는 여러 단단한 구성요소가 합쳐진 복합체가 음악이다. 그래서 연주자들도 음악을 제각각의 각도에서 바라본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다. 본질에 대한 확실한 이해만 있으면 된다. 셰익스피어를 번역해도 그 내용은 변치 않는 것처럼, 음악도 결국은 관점의 문제다."
-평소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자기만의 해석을 강조하는지.
"학생들에게 조금 더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얻은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200번 넘게 연주해봤다. 매번 똑같이 할 수는 없지 않나. 때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를 단지 느낌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왜 다르게 연주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의 논리적 관점을 갖추고 있어야, 같이하는 연주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 그래서 첫 레슨 때는 꼭 학생과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화한다. 듣다 보면, 학생과 선생의 관계가 아니라 저렇게도 받아들일 수 있구나, 그런 다양성을 발견하게 된다."
-인터뷰에 앞서 인사를 나누면서 "이번 학기 어떻게 보내셨냐"고 물었는데,"해외 연주가 많이 취소돼서 아쉽다"고 답했다. 강단에 서는 것도 보람된 일이지만, 연주자로서 더 활발히 활동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바이올린 하는 사람이니까. 욕심이란 현재 하고 있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아닌가. 연주는 내 삶의 일부다. 연주자와 교육자로 구분하기보다,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 진정으로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학생들에게도 좋은 가르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