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지난 23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공여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날선 공방이 있었다. 박영수 특검팀은 재판부를 향해 "수동적 성격의 뇌물로 보이게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재판부는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전제하는 변론은 자제해 달라"고 반박했다.

박영수 특검팀의 일관된 주장은 "이 부회장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공여한 뇌물은 대가성이 있는 적극적·능동적 성격의 뇌물"이라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적극적·능동적으로 뇌물을 공여했고, 박 전 대통령 측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식의 대가를 줬다는 논리다.

권력의 요구 내지 강요에 따른 '수동적 뇌물'일 경우 집행유예가 유력하지만, 반대로 대가를 전제로 소위 '거래'를 했다면 '적극적 뇌물'에 해당할 수 있다. 후자일 경우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한번 되짚어볼 것은 권력과 자본과의 관계다. 알고 보니 권력은 허수아비였고 배후에는 거대한 자본 권력이 있었다든지, 또는 특정 자본이 정권 창출을 주도했다든지 하는 마치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국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정말 극소수만 아는 엄청난 조직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역대 정권을 되짚어보면 자본이 정치권력과 동등했거나 또는 우위에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한때 재계 10위권까지 들어갔던 대기업이 정부 또는 국책기관의 결정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현장에서도 재계의 권력 눈치보기는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소통을 빌미로 청와대나 국회에서 수시로 주요 기업 총수를 불러내는 것도, 정부 정책에 맞춰 기업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는 것도, 우연이라기보단 살기 위한 눈치보기에 가깝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중심제의 힘은 기업의 존망을 흔들 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부터 기아자동차, 대우조선해양, 한진해운, 그리고 이제는 아시아나항공까지 정부와 국책기관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례는 수시로 있었다. 현재 정부여당은 상법개정안 등으로 기업의 지배구조 자체를 흔들어 놓으려 하고 있다. 재계가 현 정부 출범 이후 최소 수십 차례는 재고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부여당은 거창하게 '공정경제 3법'이라는 타이틀까지 걸면서 재계를 압박하고 있다.

재계 출입을 수년간 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재계 반응이나 영향력을 취재할 때가 많은데,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재계 단체를 제외하고 기업 측 멘트를 실명으로 써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설령 비판이 아니더라도 실명 공개를 전제하면 절대로 말을 안 해주기 때문이다. 기업인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정부 정책에 비판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기업 대표가 실명으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국내에는 없다. '찍힐까' 무서워서다. 실제로 그런 사례는 종종 현실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의 'OECD 2018 상품시장규제(PMR) 지수의 산출 결과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PMR 지수는 1.69로 조사대상 34개 OECD 국가 중 5위 수준이다. 순위가 높을 수록 규제수준이 높다는 뜻이다. 특히 '기업활동에 대한 개입' 항목은 OECD 평균(1.29)보다 매우 높은 1.92로 34개 국가 중 3위를 나타냈다.

만약 기업이 권력으로부터 무엇을 바란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권력이 먼저 요구해야 그에 응하며 상응한 대가를 '막연히' 바라는 방법 밖에 없다. 앞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약 70억원을 건네고도 수동적 뇌물임을 인정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롯데 역시 당시 면세점 사업 허가를 위한 대가성이라는 의혹이 있었지만 수동적 뇌물로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박영수 특검팀은 삼성만은 권력과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불법적 거래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을 너무 과도하게 포장하는 것은 언론과 여론이 아니라 특검팀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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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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