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정, 우리 안의 적
이재석·이세중·강민아 지음 / 지식너머 펴냄
"일본군 100명보다 밀정(密偵) 하나가 더 무섭다"는 말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진영 내부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 말은 밀정이 얼마나 치명적 존재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밀정은 단순히 동족을 배신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일제의 통치체계 맨 아랫단에서 실핏줄이 되어 독립운동 진영을 내부에서부터 파괴시킨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밀정은 친일파와 다르다. 친일파들이 대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공개적 활동을 했던 반면 밀정은 보이지 않았다. 해방을 맞자 밀정은 아무런 청산 과정 없이 역사의 어둠 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 책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KBS 탐사보도부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밀정' 2부작을 바탕으로 만든 책이다.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중국 당국의 공문서 5만여장을 입수하는 등 1년여의 지난한 취재를 거쳐 발굴한 역사다. 책에는 방송에 미처 담지 못했던 자료에 대한 자세한 분석, 역사적 사건의 전후 맥락, 생생한 취재 과정과 기자들의 소회 등이 더해졌다.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밀정은 20여명에 불과하나 취재를 통해 추적한 밀정 혐의자는 895명에 달한다. 여기에는 잘 알고있는 독립운동가까지 포함되어 있어 우리를 경악시킨다. 대표적 인물이 연해주 지역에서 활약했던 의병장 엄인섭이다. 그는 홍범도, 안중근과도 가장 가까운 동지였다. 하지만 그는 오래 전부터 밀정이었다. 그는 1908년 11월 일본 영사관을 찾아가 자신을 밀정으로 고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청산이 되었든 안 되었든 친일파는 짧게나마 비난의 손가락질이라도 받았다. 그러나 밀정은 사라졌다가 다시 야금야금 스며들었다. 이들은 신생 대한민국의 군과 경찰, 정치권, 관료층에 알게 모르게 흡수되었다. 남몰래 스며드는 것이 이들의 주특기이자 전공이다. 저자들은 일제강점기의 밀정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스며든 밀정의 흔적도 추적할 생각이다. 기억해야 할 역사에 대한 기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저자들의 활약상을 기대해 본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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