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많은 인구가 빈곤을 피해 이민을 떠날 정도로 가난했지만 20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제조업을 바탕으로 급격히 성장한 나라. 국제 무역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거대 글로벌 대기업이 경제성장을 주도한 나라. 높은 기술 수준으로 글로벌 혁신을 선도해가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이야기가 아니다. 스웨덴 이야기다.
한국과 스웨덴은 그 성장 과정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일찍이 배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교육에 힘썼고 혁신의 가치를 중시해 기업 경쟁력을 키워 왔다. 세계시장을 무대 삼아 성장한 점도 같다. 그 결과 탄탄한 제조업 기반의 산업구조를 갖게 됐고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거대 대기업들도 생겼다. 정부의 용의주도한 국가정책과 국민들의 노력이 뒷받침 됐고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 질서와 글로벌 가치사슬(GVC) 구성을 위한 국가 간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의 여건은 좀 다르다. 세계는 덜 개방적이 됐고 무역은 덜 자유로워졌다.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하고 국가 간 통상 분쟁으로 긴장이 가득하다. 올해는 팬데믹으로 사람과 물자의 국경 이동마저 어려워져 경제의 상당 부분을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과 스웨덴 같은 국가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일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한국이 잘 대처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이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7월 우리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 디지털경제와 그린경제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에 디지털 기술 및 인프라를 방역과 결합해 민첩하게 대응하면서 우리의 5세대 이동통신(5G), 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린경제로의 전환도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을 기점으로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은 이미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및 에너지 사용 절감 등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자원의 선순환을 위한 지속가능경영 부문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기업의 대응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지속가능경영이 비용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많은 제도적 뒷받침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디지털과 그린경제 이슈를 주도해 온 나라는 유럽연합(EU) 중에서도 스웨덴이 단연 선두다. 에릭슨은 한국 통신사들과 5G 기술 상용화에 어깨를 나란히 했고 스포티파이, 모장과 같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혁신 기업들도 스웨덴에서 탄생했다. 스웨덴은 또한 1990년대부터 '녹색 국민의 집'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2017년 의회에서 '기후정책 프레임워크'를 발표하며 204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중립 달성 목표를 수립하고 있는 기후변화 선진국이기도 하다.
에릭슨이나 H&M, 볼보 등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스웨덴 기업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항목이 주요 카테고리로 등장해 각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국가가 로드맵을 수립하고 이를 기업들이 이행하며 체계적으로 '탄소 제로' 국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린경제로의 전환에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스웨덴과의 협력 잠재력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로운 생각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생각을 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게 될 뉴노멀의 시대는 디지털 기술이 일상 곳곳에 침투해 더 이상 디지털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시대가 될 수 있다.
뉴노멀의 시대로 가는 길에 한국과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한 자리에 모여 디지털 대전환과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해 논의하는 '한-스웨덴 디지털경제·통상 포럼'이 무역협회 주관으로 오는 23일부터 이틀간 열린다. 한국과 스웨덴은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빈곤과 경제침체를 딛고 일어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다. 팬데믹과 보호무역주의 속에서 두 국가가 연대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19와 뉴노멀 시대를 이끌어 갈 시너지를 발휘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