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ICT과학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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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잘 알려져 있듯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다. 그리고 플라톤의 제자는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다. 석가와 예수, 공자 등 위대한 성인들도 그들을 따르려던 수많은 제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추앙받는 존재가 됐다. 이처럼 인류 역사상 위대한 철학이나 가르침은 스승과 제자, 즉 '사제(師弟) 관계'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代)를 이은 사제 간 오랜 축적의 산물이 인류의 지혜이자, 행동양식으로, 그리고 보편적 진리로 오롯이 계승·발전해 왔다.

사제 얘기를 꺼낸 것은 지난달 진행된 노벨상 수상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특히 올해는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IBS 나노입자연구단장)이 노벨화학상 유력 후보로 선정된 탓에 관심이 집중됐다. 결국 올해도 한국인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취재하면서 머릿 속을 관통한 건 '사제'와 '축적'이라는 두 단어였다. 사제를 기반으로 오랜 시간 학문적 업적이 켜켜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나라도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경매이론을 발전시킨 공로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로버트 윌슨, 폴 밀그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사제지간이다. 직장에 다니던 밀그럼 교수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윌슨 교수의 수업을 들은 게 사제 관계를 맺게 된 계기가 됐다. 이후 윌슨 교수는 직장으로 돌아가려던 밀그럼 교수에게 "공부를 더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이를 밀그럼 교수가 받아들여 본격적인 학문적 사제 관계를 형성했다. 돌이켜 보면, 스승과 제자의 학문적 파트너십이 노벨상 수상까지 이어지게 한 것이다.

특히 윌슨 교수는 밀그럼 교수 외에 2016년 계약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벵 홀스트롬 미국 MIT대 교수, 2012년 '협조적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앨빈 로스 스탠퍼드대 교수 등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본인과 함께 자신이 가르친 3명의 제자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진기록(노벨상 해트트릭)을 세웠다. 이 모든 게 위대한 스승을 정점으로, 스승의 학문적 업적을 이어받아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 특별하고 유능한 제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항상 우리의 비교 대상이 되는 일본의 과학사를 살펴보자. '일본 과학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1937년 현대 가속기의 초기 형태인 사이클로트론을 독자 개발한 니시나 요시오 박사는 패망 이듬해인 1946년 이화학연구소(RIKEN) 소장에 취임했다. 사이클로트론 개발 당시 제자였던 유가와 히데키, 도모나가 신이치로 박사는 니시나 스승의 유지를 이어받아 연구를 지속한 결과, 각각 1949년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역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보면 다수의 학문적 스승으로부터 오랜 기간 지도를 받아 배출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인공 방사능 물질을 만든 공로로 193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엔리코 페르미는 6명의 수상자를 배출했고, 어니스트 로렌스와 닐스 보어는 각각 4명의 수상자를 길러냈다. 심지어, 스승과 제자 계보가 다섯 세대에 걸쳐 연결된 경우도 있다. 190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빌헬름 오스트발트는 발터 네른스트, 로버트 밀리컨, 칼 앤더슨, 도널드 글레이저 등 노벨상 수상 계보가 반 세기에 걸쳐 진행됐을 정도다.

노벨경제학상을 처음 수여한 1969년과 1970년에 수상자로 선정된 폴 새뮤얼슨 교수는 노벨상 수상 즉흥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탈 수 있는지 여러분들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 조건 중 하나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내가 시카고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제자로서 함께 연구했던 많은 훌륭한 경제학 스승들을 나열하겠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학문적 사제도, 축적의 시간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희망까지 버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 후보로 꼽힌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를 비롯해 유룡 KAIST 특훈교수,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 등도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하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그 분야를 선도하고 있어 조만간 '한국인 첫 노벨과학상 수상'이라는 소식을 온 국민에게 전해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은 스승과 제자라는 학문적 테두리 속에서 탁월한 스승을 식별하는 제자의 능력과 유능한 제자를 알아보는 스승의 혜안과 안목이 더해질 때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한 분야에서 학문적 성과를 축적할 수 있는 건강한 과학생태계 구축도 시급해 보인다. 노벨상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 나오다)'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준기ICT과학부 차장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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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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