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민주화는 독재정권을 깨뜨리고 시민이 투표권을 쟁취하는 데서 시작했다. 나는 경제적 민주화는 재벌과 대기업의 경제적 독점을 깨뜨리고, 시민이 경제의 주체로 나서는 데서 비로소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공정경제 3법'을 발의했다. 나는 정부의 법안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큰 틀에서 방향이 있으니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재벌과 대기업의 독점을 깨뜨리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현 정부의 국정 목표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의 첫발을 온전히 내딛지 못하고, 반발만 떼게 되는 셈이다.
정부 발의 공정경제 3법 중, 상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밝혔듯, 재계와 조율을 통해 많이 후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과제였던 '집중투표제'는 빠지고, '전자투표제'는 조건부 타협안으로 바뀌었다. 대주주의 사람들로 채워지는 이사회에서 감사만이라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따로 뽑자는 '감사위원분리선출제'는 감사 중에 1인만 분리선출 하는 안으로 타협했다. 기업의 독점적 지배구조에 균열을 내려던 법안이, 못이나 몇 개 박는 정도로 주저앉은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삼성출신 민주당 최고위원 양향자 의원이 나섰다. '감사위원분리선출제'에서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이 문제라는 것이다. 전부도 아니고 단 1인의 감사를 선출하는 데에도 대주주 마음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호응했다. 두 사람 모두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거대양당의 국회의원이다. 3% 룰을 빼야 한다는 근거는 '경영권 방어'와 '기술탈취 우려'이다. 국민의 불안감을 자극할 뿐,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대주주의 사람으로 채워진 이사회에서 단 한 명의 감사가 경영권을 위협하고 기술을 탈취한다? 엄살도 이런 엄살이 없다. 그간 익숙했던 독점 경영권을 일부라도 잃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다.
나는 이런 재계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읊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경제민주화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1인 1표의 권리를 쟁취할 때, 이를 독재정권이 납득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독점을 허용하는 기업지배구조를 고치자고 하는데, 왜 독점의 당사자를 납득시키려 하는가? 하나같이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지만, 한발짝을 떼기도 힘든 것이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이다.
지난 9월 말 나도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의 상법 개정안에서 빠진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는 물론이고, 감사위원 전원의 분리선출, 노동이사제, 주주대표소송 제기 요건 완화 등이 담겼고, 정부 안에서 모자회사 관계에서만 가능한 다중대표소송제를 사실상 지배관계에 놓인 회사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정경제 3법'에 해당하는 공정거래법과 금융그룹감독법도 발의 준비 중이다. 상법과 마찬가지로 정부 발의안에 담기지 않았거나, 재계의 압력으로 인해 후퇴한 부분을 제대로 이야기할 참이다.
사실상 경제민주화의 출발을 위한 핵심과제라 할 수 있는 이 법안들이 제대로 제·개정 돼야 한다. 이는 모든 정당이 '경제민주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국민적 공감대에 우리 정치가 부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촛불을 들고 일어나 대통령을 탄핵하는 세계적 대사건이 일어난 이유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정유라가 SNS에 남긴 한마디다.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자연스러운 신분 상승의 희망이 차단되고 재산뿐만 아니라, 채용비리 등으로 이제는 직업까지도 부모의 신분에 따라 대물림되는 '신종신분사회-헬조선'에서 울분과 좌절이 쌓이고 쌓여있던 차에, 저 한마디가 국민의 마지막 자존심을 짓밟았던 것이다.
이제 경제민주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어떤 정권이든 시민의 의도와 바람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촛불을 들고 정권을 내쳤던 무서운 시민들의 외침을 다시 듣게 될 것이다. 나는 유일한 수도권 구청장 출신의 진보정당 정치인이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면, 국민을 섬기는 자세이다. 그것이 도덕률을 넘어 얼마나 정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지 깨달았던 몇 번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초선 국회의원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무서움을 알고, 그 명을 받든다는 심정으로 '경제민주화'를 거침없이 밀고 나갈 생각이다. 초행길이 어렵다지만, 진보정치의 길은 언제나 앞날을 개척하는 길이었다. 평등하고 존엄한 우리의 미래,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꼭 필요한 초선 국회의원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