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통치자가 들고 있는 정의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있다. 저울이 고장 나면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게 됐다. 손쉽게 우리 편은 정의롭고, 다른 편은 언제나 불의가 된다. 그런 통치자 주변에는 탐욕과 오만, 허영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속임과 배신, 폭력과 잔인함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악몽이 된다. 검문과 단속이 일상화된다. 거리에는 가난과 고통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를 한 움큼씩 갖고 산다."

2020년 대한민국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암브로조 로렌체티(Ambrogio Lerenzetti)가 시에나 시청사에 그린 벽화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 우화'중 나쁜 정부에 대한 내용이다. 시에나는 한때 피렌체와 경쟁할 정도로 번성했으나 14세기 흑사병으로 도시의 인구가 크게 줄면서 쇠퇴했다. 14m에 달하는 중세 시대의 벽화에는 좋은 정부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최고 통치자 왼쪽으로는 관용과 절제, 정의, 평화, 용기, 신중을 상징하는 미덕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런 세상에서 시민들은 질서 있는 일상 활동을 한다. 상업은 활발하고, 사람들은 풍요롭다. 권력의 사악함이 없기에 두려움도 없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데이빗 밀러(David Miller)교수는 "시에나 시청사에 표현된 정치에 대한 인간의 3가지 인식은 현대에도 유효하다"고 지적한다. 첫째로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것이다. 벽화에서 묘사하듯, 사람들은 정치가 올바로 이뤄질 때 일상의 일에 집중하게 된다. 만약 정부의 통치에 문제가 있다면 사람들 일상의 삶은 후퇴하게 된다. 현대 정부는 단지 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모든 일상에 관여하고 있다. 국방과 복지, 교육, 주거, 교통 등 정부의 관여가 없는 곳이 없다. 정부의 개입이 지나치면 사람들은 간섭으로, 규제로 여기게 된다. 현 정부의 23번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주거불안은 더 심화되었다. 정부의 개입으로 삶의 불안이 증폭된다면 이는 나쁜 정부의 간섭이다.

벽화는 나쁜 정부와 좋은 정부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도자의 선택에 따라 국민들의 삶도 좌우된다는 것이다. 한 때는 풍요롭게 살았으나 지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경제가 무너진 경우도 많다. 가령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는 지도자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피폐해진 경우다. 선진국들은 정치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국가가 무너지지 않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왔다. 공무원들의 정치중립과 언론의 감시견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공무원이 정권에 예속되고, 언론이 홍보수단으로 변질되면 참혹한 결과로 이어진다.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에서 보여주듯, 대통령 말 한마디에 원전의 경제성 평가가 왜곡되는 세상이라면 결코 좋은 정부라고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은 또한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를 구별하고 좋은 정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로렌체티가 그린 벽화를 통해 얻는 교훈이기도 하다. 우리 국민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투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정치효능감이 강하다. 국민들은 2017년 3월 당시 나쁜 정부로 보였던 박근혜 정부를 탄핵했다. 그리고 그 해 5월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켰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민주당을 다수당으로 선택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게 과거와는 다른 좋은 정부가 되어달라는 당부였다. 하지만 공익 대신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행태는 반복되고 있다. 정치는 물론 행정, 사법의 영역에서도 내 편과 네 편 가르기가 진행 중이다.

지난 추석 이후 테스형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 가수 나훈아는 신곡 '테스형'에서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고 묻는다. 노래가사처럼 사람들이 "내일이 두렵다"고 말하는 세상이라면 이는 분명 좋은 정부는 아니다. 지난달 30일 TV에 출연한 나훈아는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며 "국민이 힘이 있으면 (거짓으로 정치를 하는) 위정자(僞政者)들이 생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14세기 이탈리아 시에나와 21세기 대한민국은 시공간을 달리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깨어있는 힘이 나쁜 정부의 위정자를 막는다는 사실은 같다. 바꿔 말하자면, 나쁜 정부와 위정자는 국민들의 무관심으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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