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중 생중계 진행하며 변해야겠다 생각
유튜브 진출하면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어
코로나 시대 색다른 아이디어 펼칠 적기
원점에서 얼마나 열려있느냐가 승리 관건

강은일 서울돈화문국악당 예술감독.  [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강은일 서울돈화문국악당 예술감독. [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강은일 서울돈화문국악당 예술감독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2019년 서울돈화문국악당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강은일은 대중에게 해금 연주자로 더 익숙하다. KBS국악관현악단·경기도립국악단에서 활동했고, 1999년 해금플러스를 창단해 국악의 저변을 넓혔다. 세계 34개국에 해금을 알린 그이지만, 극장을 이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주자 외길인생에서 고대하던 변화의 기회였다.

강 예술감독은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유동적이고 열려있는 공간이다. 추진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변화할 여지가 있는 곳"이라고 힘차게 말한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마주한 서울돈화문국악당은 140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2016년 개관 이래 알음알음 인지도를 높여가던 신생 극장이 대번에 주목을 받은 것은 올해 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2.29)를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로 전환하면서부터이다. 어느덧 당연해진 공연 영상화 흐름에 물꼬를 튼 것이다. 온라인 콘서트 '링크'(4.27~7.3)는 유튜브에서 평균 조회수 1,000회를 넘었다. 강은일 체제의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지금, 어느 때보다 많은 관객과 만나고 있다.

[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변화를 선도하는 극장

- 코로나 사태로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반기를 보냈다. 올 초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를 빠르게 시도했는데.

"정말 변화를 온몸으로 체험한 시기였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공극장이다. 위기에 맞서려면 우리가 빠르게 변화를 감지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어려움에 처한 예술인을 이끌고 함께 난관을 극복했다. 아마 내가 연주자의 위치에 있었다면 코로나19로 초래된 변화를 억지춘향으로 따랐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 그간 국악은 영상 매체와 거리가 멀었다. 예컨대 올해 국악방송은 2001년 라디오 방송으로 개국한지 20여 년 만에 TV 채널을 가졌다.

"이전까지 텔레비전에서 국악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는 KBS1 '국악한마당'이 전부였다. 그만큼 국악은 영상화 작업을 안 해왔다. 이제 막 영상과 어떻게 엮여야 하는지 실험하는 단계에 있다."

- 국악 공연을 영상으로 풀어낼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국악을 잘 아는 영상제작자가 없다는 것. 우리 의도와 카메라에 담기는 모습이 다르더라. 콘텐츠는 국악인데 영상 문법은 대중음악에 맞춰져 있는 거다. 그렇다고 매번 국악을 이해시키기엔 공연 생중계를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고."

- 불가피하게 시작됐지만, 영상은 국악의 접근성을 높이기에 유용한 수단이다. 유튜브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 파급력도 상당하다.

"나조차도 요즘 유튜브를 달고 산다. 유튜브에는 운동·강연·예능·공연 영상이 다 있다. 잘만 만들면 국악도 충분히 사랑받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연주 영상뿐 아니라 다양한 내용으로 영상을 만들려고 한다."

'돈화문 나들이'는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자랑하는 여러 기획물 중 하나다. 이번 '2020 돈화문 나들이'(9.25~11.27)는 영상으로 제작된다. 원래는 관객 20여 명이 돈화문로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관람하는 투어 형식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 감염세가 진정되지 않아 온라인에 적합한 형식으로 바꿨다. 10인의 예술가가 창덕궁에서 종로3가역에 이르는 돈화문로를 소개하는 일일 가이드가 된다.

- 특별한 국악 관광 콘텐츠를 기대해도 될까?

"예술가에게 맡겨 두자고 했다. 이들이 직접 장소를 선정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영상을 통해 예술가의 이야기를 얼마큼 호소력 있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다. 노래 한 자락, 장신구 한 점도 풍경과 어우러지게 신경 쓰고 있다. 영상을 보고 나중에라도 돈화문로를 둘러볼 마음이 생기도록."

- '2020 돈화문 나들이'(11.13)에 직접 참여한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인가.

"여러 예술가가 돈화문로의 과거·현재·미래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중에서도 나는 현재를 이야기하려한다. 연주자라는 강점을 살려, 말보다 음악으로 서울돈화문국악당 일대의 감성을 전하겠다."

'운당여관 음악회' 생중계 리허설.  [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운당여관 음악회' 생중계 리허설. [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새로움에는 경계가 없다

강은일은 해금보다 바이올린을 먼저 손에 잡았다. 의외이지만, 훗날 동서양의 악기를 만나게 한 그의 이력을 떠올리면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클래식 음악, 재즈 음악, 월드뮤직, 팝 음악으로 해금의 영역을 넓혔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해금은 깍두기 같은 악기였다. 산조하면 가야금이고, 정악하면 대금, 피리였다"고 떠올렸다. 섞이며 더욱 진해지는 힘을 그때 길렀다.

'무경계 해금 연주자' 강은일의 행보는 그가 이끄는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지난, 그리고 앞으로 예정된 프로그램에서도 엿보인다. 국악이 사주명리학('당신의 팔자를 살리는 음악')과 만나고, 이북의 굿('대륙시대-망묵굿')과 만나고, 연극과 만난다('대륙시대-만주여신'). 서울돈화문국악당은 마치 새로운 국악을 시험하는 테스트베드처럼 보인다. 원래 변화는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던가.

- 취임 이후 무게감 있는 레퍼토리를 기획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시리즈 '대륙시대'가 대표적이다. 첫 시즌(2019.11.16·17)으로 함경도 망묵굿을 선보였다. 25시간 동안 이어진 실험적인 공연이었다.

"25시간 내내 공연하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말렸다. 그래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관객 덕이다. 오후 11시 입장 공연인데 만석이었다. 공교롭게도 망묵굿의 정수를 선보이는 차례였다. 다시금 깨달았다. 잘 모른다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 관객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관객을 향한 믿음이 생겼다. 더 좋은 예술, 더 높은 예술을 만들자 결심했다."

- 반면 단번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연도 있다. 사주명리학과 국악을 연결한 '당신의 팔자를 살리는 음악'(1.10~18)이다.

"관객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흥미로운 기획도 필요하다. 관객의 사주팔자를 풀어, 모자란 음양오행을 채워주는 곡을 연주했다. 무대에 선 연주자들 말로는, 어느 때보다 관객의 집중도가 높았다고 한다.(웃음)"

- 예술성과 대중성만큼 공공극장에 요구되는 것이 공공성이다. 예술감독으로서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치우침이 없는 것 아닐까. 언젠가부터 공공자원과 혜택이 젊은 연주자에게 쏠렸다. 물론 국악계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를 북돋아 주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정작 음악을 갈고닦은 중견 연주자가 설 무대가 모자라서는 안 된다. 이들의 소리를 더 듣고자 기획한 '산조대전'이 내년 2월 즈음 선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운당여관'(3.19~29)을 통해서는 자신의 예술을 만들어나가는 젊은 연주자들과 만났다."

- 악단이나 무용단 등 극장에 소속된 예술단체 없이, 계속해서 기획공연을 올리기가 쉽지 않겠다.

"오히려 그래서 민간과 더욱 밀착할 수 있다. 지금 바깥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예술가는 누구인지, 우리 극장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주의 깊게 살핀다. 항상 예술가와 소통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외부 예술가를 섭외하는 형태이다 보니, 기획공연이 단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레퍼토리로 남는 공연을 만들고 싶은 바람은 있다."

- 매번 다른 예술가, 새로운 장르와 결합하는 것이 예술가 강은일의 숙명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급변하는 시대를 맞은 국악의 운명 같기도 하고.

"열정과 재능,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는 자에게는 지금이 최적의 시기다. 코로나19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모두가 제로 베이스(zero base)에 놓여있다. 과거의 규칙, 예컨대 나이가 많다거나 하는 것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오직 얼마나 열려있느냐가 승리의 관건이다."

- 하반기 주목할 만한 공연은.

"지난해에 이어 '대륙시대' 두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이다. 역사의 땅 만주를 소재로 한 신화를 전통음악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세혁과 작곡가 이태원이 참여한다. 전형적인 극 형태는 아니고, 음악 소품집에 가까울 것이다. 많은 기대 바란다."

글=월간객석 박서정기자·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