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 지붕 서재는 대나무 길에 이어 있고

가을 햇살은 곱고 청명하게 비추네

열매는 익어 높은 가지에 무겁게 달려 있고

오이는 차갑게 성근 덩굴에 매달려 있네

벌들은 쉴 새 없이 날아다니고

한가한 오리는 서로 기대어 조네

자못 몸과 마음이 고요한 줄 알았으면

한가히 사는 것이 세상사 어기지 않기를 바라네



조선 초기 문신이자 문장가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시다. 추분 전후의 가을 서정이 물씬 묻어난다. 예의 이 시에도 벼슬을 내려놓고 한가로이 지내고픈 '서지( 棲遲)'의 뜻을 담았다. 그것은 대개 조선 양반의 권력상실에 대한 '부적'이었다. 그러나 서거정은 평생 조정에 있으면서 많은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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