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 천, 높을 고, 말 마, 살찔 비, 천고마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으로 가을이 활동하기 좋고 풍성한 계절이라는 의미다. 덥고 습하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 습도와 기온이 내려가 사람이나 동물에게 좋은 기후적 환경이 된다. 원래는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로 당나라 시인 두심언(杜審言)의 시에서 유래한다. 가을 하늘이 높으니 변방의 말이 살찐다는 의미였는데, 어느새 '추고새'가 '천고'로 대체되면서 천고마비가 됐다.
두심언은 당시의 거목 두보(杜甫)의 조부로 일찍이 문명(文名)을 떨쳤다고 한다. 군인으로 변방에 나가 있는 친구가 하루빨리 장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지은 시의 승구(承句)가 '추고새마비'다. 시는 변방의 정황과 군대의 승리, 참전 군인의 당당한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당군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참전 군인들의 노고를 치하하려 한 것이다. 맑고 높은 가을 하늘에 전장에서 승리하고 깃발을 높이 날리며 개선하는 장군의 모습을 비유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중국인들에게 천고마비는 근심의 계절이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어 날씨가 좋아지면 북방 민족들이 중국 북방 변경에 나타나 약탈을 했다. 혹독한 겨울에 대비해 식량을 축적하기 위해서다. 변경 지역 사람들에게는 천고마비의 가을은 흉노 등 북방민족이 침입해올까봐 전전긍긍하는 계절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천고마비는 북방 유목민족이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의미와 함께, 그와 정반대로 지나인들에게는 북방민족의 침입을 걱정해야 한다는 경계의 의미를 갖고 있다. 두심언이 승전보 시에서 천고마비를 읊었지만, 실은 중국인들에게 달갑지 않은 사자성어로 각인돼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태풍이 연거푸 지나고 볕이 아직 따갑지만, 이내 높고 깊은 푸른 하늘과 솜털구름이 곧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야외활동 하기 좋은 계절에 '집콕'을 해야 하는 것이 아쉽지만, 아꼈다 만끽하면 기쁨이 배가되는 만큼 사회적 거리두기는 꼭 지켜야 한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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