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자전거를 애용하는 나라 중에 랭킹을 매긴다면 아마도 최상단에 이름을 올릴만한 나라가 일본일 것이다. 전국 어느 도시를 가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물결을 흔히 볼 수 있는 곳이 일본이다. 건장한 청년들은 물론 다소 힘들어 보이는 노인들, 심지어는 짧은 치마나 교복을 입고 씽씽 달리는 여성 자전거족들을 여행하는 중에 신기하듯이 쳐다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왜이리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닐까 하는 궁금증을 여행하면서는 그 해답을 찾지 못했으나 얼마 전 일본에 거주중인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가 그 원인을 확실히 알게 됐다. 일본의 도시들은 오래 전부터 거미줄 같은 전철과 지하철역 망을 중심으로 집중 개발되었고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가는 그로부터 제법 떨어져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주택가와 전철역을 연결해 주는 수단으로 간선 버스가 있지만 한번 타는 요금이 약 220엔(약 2500원)이나 하고 한국처럼 환승 할인 시스템이 없어서 매일 타기에는 부담스럽다.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걸어서 가겠지만 바쁜 직장인들 입장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해서 전철역까지 가는 게 최선인 것이다. 결국 일본인들의 자전거 애용 문화는 다른 물가 대비 상당히 비싼 교통비를 최대한 줄여보자고 하는 필요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여행 중에 봤던 자전거족들은 요즘 흔히 얘기하는 자출족(자전거 출근족)이 아니라 전철역까지만 왕복하는 반(半) 자출족이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쇼핑을 하기 위해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슈퍼마켓을 가거나 전용 안장을 장착해 유치원 등에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주부들은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 또한 비싼 교통비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일지 모른다. 그런데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는 이러한 자전거 문화도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기어가 없는 일반형 자전거 매출이 거의 대부분이었던 자전거 시장이 고급사양이 장착된 통근용 스포츠 바이크나 전문 산악자전거, 고가의 전기자전거 등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팔리고 있다. 재고부족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발생 이후 3밀(밀집, 밀폐, 밀착)자제 캠페인 덕분에 전철역까지만 자전거를 이용하는 반자출족이 아닌 직장까지 타고 가는 자출족들이 급증한 탓이다.
이러한 범 국민적 자전거 문화의 변화와 더불어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관리돼 온 것이 자전거관련 규제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보니 자동차 법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꽤 엄격한 레벨의 법규를 전국 25개 지자체 차원에서 운영 중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구매할 때 등록스티커를 배부 받아 불법주차, 도난 관련 관리를 받게 되고 신호위반, 교차로 통행 시 자동차 진로 방해, 보행자 통행방해 등 총 14가지 자전거 도로교통 위반사항을 정해놓고 3년내에 2회 이상 위반한 사람들은 수강료 5700엔(약 6만5000원)을 내고 안전강습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위반 시 벌금 5만엔(약 56만원)을 물어내야 한다. 특히 도쿄는 올 4월부터 자전거 사고에 대비한 보험가입을 의무화 하기도 했다.
일본에 비해 환승 서비스가 탁월한 한국은 필수 수송수단이 아닌 건강관리라든가 환경보호차원에서 자전거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그 속도가 급속하게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관련 법규나 보험상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사고 발생시 좌충우돌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머지않아 개성 있는 멋진 번호판을 뽐내며 달리는 자전거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