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당 대표 '무릎 사죄'는 처음…"너무 늦게 찾아왔다, 역사의 매듭 푸는 계기 됐으면"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광주를 방문해 5월 영령과 유족들에게 "광주의 소식을 알고도 침묵하거나 눈감은 행위,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않는 소극성 역시 적잖은 잘못"이라며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5·18 민주 묘역을 참배한 뒤 "부끄럽고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너무 늦게 찾아왔다"며 "제 미약한 발걸음이 역사의 매듭을 풀고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나가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여러 기회를 통해 (김 위원장 본인이 과거 신군부가 설치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재무분과 위원으로 참여했던) 과정·배경을 말하며 용서를 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상심에 빠진 광주 시민과 군사정권에 힘들었던 국민들은 쉽게 용납하기 어려워한다"며 "역사의 법정에서는 이것도 유죄"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저는 6·25 당시 북한군의 총칼에 할머니를 잃어 바람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저는 쫓기는 자의 공포와 고립된 자의 좌절을 안다"며 "80년 5월 광주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 후 호남 주민이 겪었을 고립감과 슬픔의 감정도 못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5월 정신 계승을 부정하는 어긋난 일부 사람들에게 저희당은 엄중한 회초리를 들지 못했다"며 "정치인들이 그에 편승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잘못된 언행에 당의 책임을 진 사람으로서 진실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올해 여든인 김 위원장은 "벌써 100번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떼었다"며 감정이 북받친 듯 울먹이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 가운데 자신을 지배한 과거 제국주의 국가와 어깨를 견주게 된 유일한 나라임을 언급하면서 "그렇게 자랑스러운 역사 속에 적지 않은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상처로 남아 아직도 낡은 이념의 대립을 계속하며 사회적 통합과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역사의 화해는 가해자의 통렬한 반성과 고백을 통해 가장 이상적으로 완성될 수 있는데, 권력자의 진심 어린 성찰을 마냥 기대할 수 없는 형편에서 그 시대를 대표해 제가 이렇게 무릎 꿇는다"고 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이름 없는 희생자까지 잊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행방불명자 묘역에서도 묵념하고 헌화했다고 한다.

보수정당 대표가 추모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처음으로, 표면적으로는 호남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나아가 '국민통합' 행보를 통해 전국정당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통합당은 지난 21대 총선과정에서 호남에서 후보를 내는 것 조차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서울·수도권 민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김 위원장의 사과발언에 주변의 한 시민은 "대표님 말씀이 맞다"라면서 손뼉을 치기도 했으나, 같은 자리에 있던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학생들은 "통합당 망언 의원부터 제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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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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