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김양혁 기자] '-90조원, -110조5000억원'. 올 상반기 말 우리나라 곳간 사정으로, 각각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다. 통합재정수지는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4대 보장성 기금을 빼면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가 된다.

경제전문가들은 11일 발간된 '월간 재정동향 8월호'에 실린 수치들에 하나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돈 들어올 곳이 마땅치 않은데, 지출은 지속해서 늘고 있다는 점에서다. 2017년 세수 증대를 기대하며 올린 법인세 인상 역시 약발이 먹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수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 형편이 좋지 않자 '세수 펑크'가 나면서 나라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빛의 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언급되는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 논의에 대해선 "재정에 중독됐다"는 날선 비판까지 나왔다.

재정 악화의 가장 큰 문제는 수입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지출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총수입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조1000억원 줄어든 226조원인데, 지출은 31조4000억원 늘어난 316조원이었다. 총지출 감소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조5000억원 줄어든 법인세 감소 여파에 직격탄을 맞았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인세 세수 전망이 어둡다"며 "하반기가 상반기보다 나아진다고들 하지만, 세수를 회복할 정도로 될 것 같지는 않고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팔리지도 않는 것을 만든다든지, 근로자를 해고시키지 않고 잡아놓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기업) 이윤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며 "정상화된다 하더라도 이윤 악화에 따른 손실이 누적돼서 상당 기간 법인세 세수 증가는 어렵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과거 법인세 25%로 상향조정한다고 했을 때, 일각에서 '정답이 아닌데'라며 경계를 해왔다"며 "세율을 올리면 세금이 더 걷힌다고 생각했지만, 법인세는 더 걷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가파른 속도로 악화하는 '빚'에 큰 우려를 표시했다. 과거 2016년과 2017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6%였다가 2018년 35.9%로 소폭 떨어진 데 이어 작년 38%로 다시 올랐다. 이후 올해는 3차례에 달하는 추경으로 43.5%로, 처음 40%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태기 교수는 "한국은 재정악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가계부채도 최대, 기업 부채도 높은 수준"이라며 "그동안 재정이 받쳐줬는데, 이제 아무것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양준모 교수는 "재정지출 효과를 점검하고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하는데, 경기는 좋지 않고 정치 쪽으로 내몰리다 보니 재정에 중독이 됐다"며 "효과가 없는 지출이 만연해 경제도 나빠지고, 빚을 져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동근 교수는 "2차 추경에서 재난지원금은 자제했어야 했다"며 "뿌렸으니 거둘 수도 없고 이는 곧 국가부채가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재정악화 가운데 제시한 연말까지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111조5000억원이다. 하지만 이 적자규모도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전망이다. 김 교수는 "정부가 계속 희망의 주술을 걸고 있는 것 같다"며 "문제없는 것처럼 하고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양 교수 역시 "희망 사항일 것"이라며 "GDP 증가율에 수해까지 더해져 더 힘든 상황이 될 것이라 본다"고 했다.

59년 만에 한 해 네 차례 추경 편성에 대해서도 경제 전문가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4차 추경을 얘기하기 전에 재정에 방만한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먼저 해야 한다"며 "지금 헛돈을 너무 쓰고 있는데, 아무도 이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빚이 쌓이면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게 된다"며 "이는 결국 미래세대로 빚 부담이 넘어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 교수는 "3차 추경 당시 홍수 피해를 감안하지 않고 썼고, 예비비로만 충당이 가능한지는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세수 부족이 심화할 수 있어 문제가 대두될 것이며, 국채 발행을 통해 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봤다.

조 교수는 "그럴 거면 본예산은 왜 짜냐"면서 "아예 매달 매달 (예산을) 편성하면 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현재 4차 추경은 적자 국채밖에 답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로선 정부의 방만한 재정에 대한 대대적 구조조정 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김 교수는 "우리 재정이 너무 방만한데, 재정 효과를 분석해야 한다"며 "(재정)악화 속도가 너무 빨라 연말쯤 되면 국제 신용평가사에서 국가신용도 평가절하 시그널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 교수는 "애초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이라는 말은 여기저기 썼지만, 실제로 이뤄진 건 없다"며 "몇몇 생색내기용 재정 삭감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앞으로는 재정을 운영할 때 보수적으로 하는 게 맞다"며 "미래를 보지 않고 남의 짐을 끌어안는 희생정신이 아니라, 내 짐을 남에게 전가시키는 이기적인 '욜로' 행태를 버려야 한다"고 비판했다.김양혁기자 mj@dt.co.kr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 DB>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 DB>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 DB>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 DB>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연합뉴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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