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차크 칸국
찰스 핼퍼린 지음 / 글항아리 펴냄
칭기즈칸의 첫째 아들은 주치다. '손님'이란 뜻의 이름처럼 주치는 평생 출생 의혹에 시달렸다. 칭기즈칸은 장남이 아닌 차남 우구데이를 후계자로 선택했다. 주치는 아버지와 가장 먼 곳에 거주했지만 유럽과는 가장 근접한 지역이었다. 주치의 둘째 아들 바투는 용맹과 지략을 지닌 인물이었다. 바투는 할아버지가 아꼈던 맹장 수부타이와 함께 본격적인 유럽 대원정에 나선다. 바투는 1243년 흑해와 카스피해 일대의 초원에 킵차크 칸국(汗國·한국)을 세웠다. 이후 돈강, 볼가강 유역까지 지배하게 된다. 킵차크 칸국은 내분과 슬라브족 등 피정복 민족의 반란으로 1480년 무너진다. 이때까지의 몽골족 지배를 러시아인들은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른다.
타타르는 몽골족의 적대적 부족이었으나 후에 몽골 제국에 편입됐다. 당시 서방 세계는 몽골을 타타르라고 불렀다. '멍에'라고 지칭했듯이 몽골족은 러시아인의 목을 졸랐다. 간접통치로 다스렸지만 징세와 징병은 가혹했다. 몽골족이 물러가면서 러시아인들은 몽골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최대한 기록에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 불편한 진실을 숨긴 것이다.
이 책은 킵차크 칸국이 러시아 역사에 미친 영향을 탐구해 은닉된 역사를 복원해 냈다. 저자는 몽골족이 러시아 일대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역사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편견 없는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당시 러시아가 몽골족이 육성한 국제 상업의 혜택을 입었다고 본다. 동·서방 사이에서 무역 중심 역할을 담당한 나라가 킵차크 칸국이었고 모스크바는 최대 수혜자였다. 농경사회였던 러시아가 유목민 왕조의 중개무역 육성에 힘입어 상업적으로 도약한 것이다. 또 몽골의 보호 아래 러시아 정교회는 물질적 측면에서 거대하게 성장했다. 저자는 킵차크 칸국이 러시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이런 관점에서 이 시대 역사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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