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물이 만난다 하여 붙여진 지명대로, 이곳은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발원돼 1300여리를 흐른 한강과 북한 함경도 마식령에서 발원된 임진강 물이 서로 만나 서해 바다로 빠져 나가는 곳이다. 이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로, 또 물류와 유통의 거점으로 역사적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조선 광해군때에는 천도(遷都)론의 주 무대가 되기도 했다.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들과 건물들이 모두 화염에 휩싸이고 민심도 흉흉해져 한양의 왕기(旺氣)가 다했으니, 나라를 다시 세우는 개국(開國) 차원에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 천도론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천도론은 광해군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기초공사까지 벌이고서도 전면 폐지됐다. 당시 기득권 정치세력의 반대도 컸지만, 장기간 전쟁에 따른 민심이반, 수도이전에 따르는 재정부담, 역사성 부족 등 천도를 위한 조건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2020년 여름, 정부여당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세종시로 이전하는 수도이전 정책을 내놓으면서,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시대는 다르지만, 지금의 수도이전 논란도 광해군때의 천도론은 닮은꼴이다.
우선, 여당의 수도이전 정책은 뜬금없다. 광해군 때 천도론은 그나마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민심을 추스르고 재건국을 위한 명분론에서 출발했다고 하지만, 2020년 수도이전은 왜 갑자기 튀어 나왔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가 수도이전이 위헌이라고 판결한지 16년이 흐르는 동안, 정치권 내에서 수도이전을 위한 진지한 논의나 준비작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달 20일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국토균형발전' 이란 이유로 말을 꺼낸 지 불과 보름도 안된 상황에서 추진단까지 만들어져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이고 있다.
국가의 백년대계 차원에서 검토되고 조율돼야 할 수도이전 사업이 다분히 즉흥적이고 일방적으로 추진되면서 국민들은 궁금증을 넘어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를 회피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 카드, 충청권 표심을 확보하기 위한 대선 카드라는 해석만 난무하고 정작 당사자인 여당은 속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경제한파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말 수도이전을 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난국에 수도이전에 따른 막대한 비용은 또 어떻게 충당할지 궁금하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국론 분열이 우려되는 수도이전을 왜 강행하려 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역사성, 국가경쟁력이 크게 후퇴하는 대신 수도이전으로 얻게될 실효성이 얼마나 될지도 궁금하다. 서울은 이미 조선 개국 이후로 600년 이상 수도 역할을 하며 그 자체로 역사성과 함께 경쟁력을 갖춰왔다. 청와대,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할 수는 있겠지만, 경복궁 숭례문 등 수도 서울의 역사성과 경쟁력까지 가져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수도이전에 따르는 국론분열은 또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여당은 수도이전을 희망하는 국민의 비율이 60% 이상은 될 것이라고 당차게 제시했지만, 정작 최근 국민들의 반응은 정반대로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 업체 한국갤럽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서울을 수도로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49%)이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42%)는 응답을 앞섰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이며,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남북화해, 남북통일 시대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통일 시대를 대비한다면 상식적으로 봐도 수도의 '남하'는 사리에 맞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은 광해군의 천도가 불발로 그친 이유를, 실리와 역사성, 국민적 합의 모두에서 실패한 때문으로 평가했다. 조선 개국 이후 200여년 동안 수도로 자리해 온 한양의 역사성을 대체할 만한 강력한 실리적 명분을 제시하지 못했다. 또 당시 지배세력은 물론 민중의 강력한 지지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 수도이전도 서울의 역사성과 경쟁력을 대체할 만한 실리를 제공하거나 압도적인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결국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