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은행권 수신이 작년 말 대비 109조 원 급증했다. 상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코로나19 사태로 긴박해진 상황에서 정부·중앙은행이 유동성을 늘렸지만 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지 못한 채 은행 금고에 고여 있다는 얘기다. 가계와 기업이 소비나 투자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은행수신이 1858조 원으로 작년 말 대비 108조7000억 원 늘었다. 월별로 보면 2월에 35조9000억 원으로 가장 많이 증가했다. 3월에는 33조1000억 원, 5월에 33조4000억 원이 불어났다. 6월에도 18조6000억 원이 늘었다. 이는 기업·자영업자의 대출 증가와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은행 수신이 가파르게 느는 동안 가계·기업 대출도 비슷한 규모인 118조3000억 원이 증가한 것이다.

특히 이런 자금이 대부분 수시입출금 예금 등 단기성 자금 형태로 돼 있어 여차하면 부동산, 증시 등으로 흘러가 자산 거품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코로나 사태로 생산·소비·수출이 급감하는 상황 속에 유동성 공급 확대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한쪽에선 자금난을 겪고 있다. 풀린 돈이 생산적 부문에 투입돼 경제 선순환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란 기대가 맥 없이 무너진 셈이다. 당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생산적 부문에 자금이 돌지 않아 유동성 부족을 호소하는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팔짱만 끼고 앉아 유동성만 쏟아붓는다고 해서 경제가 저절로 좋아질 순 없다. 생산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우선 수익을 낼 만한 투자처가 있어야 하고, 그곳으로 돈이 흘러가게 하려면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 가계·기업 등 경제 주체에겐 경제를 살리겠다는 확실한 정책적 신뢰를 정부가 심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장기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노동·산업구조의 전면 혁신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반(反)기업 반시장적 정책으로 산업 역동성이 되살아나길 바라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은행으로만 돈이 몰리는 비정상적 돈맥경화 현상을 바로잡으려면 이러한 정책 불신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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