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김위수 기자] 공급과잉과 수요위축이 동시에 발생하며 경영난에 빠진 정유사들이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 상품의 원재료인 원유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분기에만 4조원이 넘는 적자를 본 만큼, 회사채까지 끌어들여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10일과 오는 20일 두 차례에 걸쳐 지난달 구입한 원유대금을 결제한다. 현대오일뱅크가 지불해야 하는 결제금액은 한화 기준 약 1600억원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6일 회사채를 발행해 시장에서 3000억원을 조달하고, 이중 절반을 원유대금납부에 활용하기로 했다.
다른 정유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날까지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가 올해 발행한 회사채의 누적 규모는 2조4300억원이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27%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 정유4사가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금액은 1조9000억원이었다.
회사별로 보면, SK에너지는 지난 4월 5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후 3100억원을 원유대금 지급에 썼다. GS칼텍스도 지난 2월 4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고 약 224억원을 원유도입에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에쓰오일은 지난 3월 발행한 회사채 6800억원 중 3100억원을 원유대금 지급에 사용했다.
정유업체들이 회사채 발행금액으로 원유대금을 바로 납부하는 종종 있는 일이다. SK에너지의 경우 통상 매년 두 번 회사채를 발행해 원유대금 지불에 사용하고 있다. 다른 정유사들도 필요에 따라 회사채로 조달한 금액을 원유도입대금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올해처럼 정유4사가 모두 회사채 발행 금액을 원유대금 납부에 쓰는 일은 드물다.산유국들의 증산경쟁으로 인한 공급과잉과 코로나19발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감소가 겹치며 정유업계는 전례없는 위기에 처했다. 수익성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팔수록 손해보는' 상황이 길어졌다. 그 결과 지난 1분기 국내 정유4사가 기록한 합산 영업손실은 4조3775억원에 달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업체 뿐 아니라 올 상반기 국내 기업들의 신경은 온통 유동성 확보에 쏠려있었다"며 "자금융통을 위해 회사채를 발행해 원가가 가장 큰 원유대금 지급에 활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유업계가 유동성 위기 우려에 대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상반기 유예했던 원유 관련 세금 납부 시점이 이달 말으로 가까워졌다. 정유4사가 내야 하는 세금은 4월분 세금인 1조4000억원과 7월에 발생한 세금이다.
정유사들은 지난 2분기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이익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여전히 수익분기점인 4달러에 한참 못미치는 마이너스 상태에 머물고 있어 적자를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이에 정유업계는 정부에 세금을 추가 유예해주거나 분할납부를 허용해달라며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