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열린 13일 박 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전 비서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겪은 고통을 밝혔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대독한 서신에서 그는 "안전한 법정에서 그 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고 했다. 또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고,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적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는 말에선 마주하게 될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 무기력감이 느껴진다. 가해자를 피해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2차 가해'에 대해선 "저는 사람이다. 저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울부짖었다.

그런데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이 무참하게 짓밟힌 성범죄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에게 권력은 더욱 잔인했다. 여당인 민주당에선 성범죄 혐의로 고소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인을 미화하려는 분위기다. 박 시장 장례식 등과 관련된 비판에는 '사자(死者) 명예훼손'이라며,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윽박지른다. 성추행 자체를 거론하지 말라는 투다. 박 시장 이전에도 '뇌물수수 사건' 등과 관련해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성완종 전 의원, 노회찬 전 대표 등이 그러했다. 그들의 자살 뒤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고, 결국 진실은 땅에 묻혔다. 영웅으로 미화된 이도 있다. 차명진 전 의원은 "이 나라는 '죽으면 영웅'이라는 이상한 도덕률이 지배한다"며 "무슨 짓을 했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모든 죄가 사해진다는 이상한 법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公)과 사(私)는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 '고소 사건을 정치 쟁점화하려는 의도'라는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은 사건의 맥락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같은 진영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위로하지는 못할 망정 인권 침해에 침묵하고, 애도 분위기에 편승해 진실을 묻으려 해선 안 된다. 그랬다간 성범죄 사건의 공범이자 또 다른 가해자란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박 시장의 죽음과 성추행 진상 규명은 완전 별개의 문제다. 결코 진상 규명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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