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때마다 결단으로 승부수
전영현 사장 "초격차 기술로
새로운 50년 만들어 나가자"

1970년 4월 23일 이병철(앞줄 가운데) 삼성 선대회장과 일본 NEC의 고바야시 고지(앞줄 오른쪽) 사장이 울산 울주군 삼남면 일대에 조성 중인 삼성-NEC 가천공장 건설 현장을 살펴 보고 있다.   삼성SDI 제공
1970년 4월 23일 이병철(앞줄 가운데) 삼성 선대회장과 일본 NEC의 고바야시 고지(앞줄 오른쪽) 사장이 울산 울주군 삼남면 일대에 조성 중인 삼성-NEC 가천공장 건설 현장을 살펴 보고 있다. 삼성SDI 제공

전영현 삼성SDI 사장이 1일 창립 50주년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삼성SDI 제공
전영현 삼성SDI 사장이 1일 창립 50주년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삼성SDI 제공


창립 50주년 맞은 삼성SDI

[디지털타임스 김민주 기자] 우리나라 전자 산업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한 삼성SDI가 1일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브라운관에서 시작해 '제2의 반도체'로 꼽히는 차세대 배터리까지 끊임없는 혁신과 변신으로 10만배 이상 매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부회장까지 이어지는 총수 3대(代)의 결단과 투자가 있었다.

삼성SDI는 이날 경기도 기흥사업장에서 전영현(사진) 사장 등 임직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전 사장은 "초격차 기술 중심의 새로운 50년을 만들어 나가자"며, 초격차 기술 확보, 일류 조직문화 구축, 사회적 책임 제고 등 3가지 실행 과제를 제시했다.

삼성SDI는 지난 1970년 1월 일본NEC와 합작으로 설립된 진공관·브라운관 생산업체 삼성-NEC로 첫발을 뗐다. 1974년 일본 자본과 합작사라는 한계를 탈피해 국산화를 목표로 하는 의지로 독자 영업권을 확보, 삼성전관공업주식회사(삼성전관)로 사명을 바꿨다. 1999년 말에는 디스플레이·디지털·인터넷 등 개념을 강조하는 뜻을 담은 현재의 삼성SDI로 사명을 변경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친 삼성SDI는 창립 이후 매출이 10만배 성장했고 임직원 수는 70년 창립 당시 682명에서 현재 2만7000여명으로 약 40배 늘었다.

삼성SDI의 이 같은 변신은 3대에 걸친 총수의 혜안과 전략적인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SDI는 1970년대 후반 제2차 오일쇼크로 모든 기업들이 어려울 때에도 '소재부터 부품, 완제품까지 완전 국산화를 이루겠다'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뜻에 따라 연간 1000만대 규모의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이후 본격적인 컬러TV 시대가 열리면서 삼성SDI는 브라운관 시장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제2의 반도체'로 꼽히는 미래 신사업인 배터리 사업 경쟁력 확보에는 이건희 회장의 결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삼성SDI는 1994년 이 회장이 미래 신수종사업 중 하나로 선정한 배터리 사업에 진출했고, 이 회장의 결단으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모든 기업이 투자를 멈출 때에도 배터리 공장 투자를 단행했다. 그 결과 IT(정보기기) 용은 물론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서도 세계 정상급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바톤을 이어받은 이재용 부회장은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업체 최고경영진과의 긴밀한 네트워크로 수주를 측면 지원했고, 지난달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과 만나 미래 신기술로 꼽히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동향 등에 대해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삼성SDI는 창립 5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6월 1일부터 한 달간 국내 6개 사업장 1만여명의 임직원들이 걸음 수만큼 기금을 모아 학교 숲을 만들어주는 '드림워킹' 등 자원봉사대축제 캠페인을 진행했다.

김민주기자 stella2515@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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