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잇따른 담화의 의도를 파악하고 대책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3일 김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확실히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됐다"며 "다음 번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라고 무력도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부부장은 지난 4일에는 "남조선 당국이 대북전단(삐라) 살포를 막을 응분의 조치를 세우지 못하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남북 군사 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의 발표 이후,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대북전단금지법 발의와 함께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비준 등의 추진에 나섰다.

흔히 '삐라'로 불리는 대북전단지는 심리전 도구로 발전해왔다. 2차 대전 당시 유럽지역에선 상대의 전투의지를 잃게 만들기 위해 무려 65억장이 넘은 전단지들이 뿌려졌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이 한반도 상공에 뿌린 삐라는 25억장에 달한다. 이는 한반도 전체를 20번이나 덮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삐라는 냉전시대(Cold War)의 대표 상징물로도 꼽힌다. 냉전시대에는 직접 화기를 사용하기 보다는 상대보다 우월한 체제를 강조하고 상대 지도자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는 심리전을 해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탈북단체들이 삐라 제작 및 살포를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들 삐라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 지는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효과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몇 탈북자들이 삐라를 읽었다는 증언으로만 효과를 추정할 뿐이다. 사실 북한의 권력체제는 삐라 몇 장에 의해 흔들릴 정도로 그리 허약하지 않다. 북한은 미국의 대외봉쇄와 오랜 경제난 등에도 70년 이상 견고하게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삐라가 북한 체제의 심각한 동요를 일으켰다기보다는 북한에서 '최고 존엄'이라 불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심기를 건드렸을 가능성이 있다. 또 북으로 삐라를 보내지 않는다고 남북관계가 호전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삐라가 남북관계 경색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북한은 표면적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로 거론했지만 이는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않음에 대한 답답함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지난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은 판문점에서 만나 6·25 전쟁의 종전선언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후 추진된 미북 정상회담의 난항 등으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 추진이 지지부진해졌다. 남북합의 이행도 방치되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독자적으로 나서서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 남북철도연결 등을 추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의지가 강해 우리 정부가 이를 단독으로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미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11월 3일 있을 대통령 선거 준비로 인해 대외정책에 그리 관심을 쏟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 내 코로나19 환자 확산과 함께 인종차별철폐 시위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 단독의 대북제재 완화는 결과적으로 미국과 외교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삐라살포금지를 위한 법안이 추진되고, 일부에서는 탈북자들을 비난하며 "북으로 돌아가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4·27 판문점 합의 국회비준을 둘러싼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갈등도 표면화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여정의 삐라를 핑계로 한 심리전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우리는 북한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면서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특히 대북전단살포는 국가가 아니라 탈북자단체 등의 자발적 행위이다. 이를 법률로 금지하는 것은 자칫 민주주의 핵심가치인 개인들의 자발적 의사표현 행위를 막는 것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6·10 민주항쟁 31주년 기념식에서 "이제 민주주의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얼굴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한다"며 '민주주의의 다양한 얼굴'을 강조했다. 민주주의 다양한 얼굴에는 탈북을 통해 우리 국민이 된 탈북자들의 얼굴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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