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 1952~1954
인보길 지음/기파랑 펴냄
대통령 직선제는 민주화 투쟁의 핵심 목표였다. 그 직선제를 도입한 것이 1952년 1차 개헌이다. '부산정치파동'이라며 깎아 내리는 이도 있으나 이로써 국민의 직접투표로 대통령을 선거하는 체제가 도입됐다. 지금은 '반(反)민주세력'으로 표변한 민주화 투쟁세력이 그토록 갈구한 대통령 직선제는 이승만의 작품이다. 그 뿐인가. 대한민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1,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토양은 자유시장경제체제다. 자유시장경제를 더 확고히 자리 잡도록 한 것이 1954년의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이란 2차 개헌이었다. 2차 개헌을 통해 사회주의 통제경제 요소를 씻어버리고 우리 경제와 사회가 좀 더 자유로운 경제, 자유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
1953년 조인하고 1954년 발효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 안보의 척추였으며 경제적 번영을 지켜주는 방파제였다. 저자는 4·19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의 적극적 해석을 내놓는다. 4·19는 이승만이 그토록 꿈꾸던 '똑똑한 국민 만들기'의 완성이었다는 것이다. 시민 시위 일주일 만에 자진 하야를 결정했고, 부상 학생의 병원을 찾아가서는 불의에 항거한 학생들을 칭찬하고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던 일을 상기한다. 하야 소식을 접한 자유중국(지금의 대만) 장졔스 총통의 위로 편지에 "불의를 보고 일어서는 똑똑한 젊은이들과 국민을 얻었으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소"라고 답한 일은 우남(雩南) 이승만의 알려지지 않은 진면목이다. 책은 1945년~1948년 3년이 '건국혁명'의 시기였다면 1952년~1954년 3년도 그 못지 않은 위대한 3년이었다고 간주한다.
80세 노구의 이승만은 1954년 7월 28일 워싱턴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33회나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으며 그 유명한 연설을 했다. 닷새 뒤에는 뉴욕 브로드웨이 '영웅의 거리'(Canyon of Heroes)에서 색종이 가루가 휘날리는 가운데 퍼레이드를 벌였다. 자유세계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미국민들의 존경심의 표현이었다. 국부(國父) 이승만은 크게 왜곡돼 알려졌다. 저자 인보길도 그의 진가를 뒤늦게야 알았다고 토로한다. 1995년 조선일보가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라는 특집과 전시회를 열 때 편집국장이 그였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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