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정경부 차장
김승룡 정경부 차장
김승룡 정경부 차장
몇 해 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모 방송사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강호동이 게임 벌칙에 걸리지 않으면 내뱉는 말이었다. 요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 말이 자꾸 떠오른다. 1980년대 국민학교에는 반공 표어와 경제 표어를 만들어 제출하는 경우가 잦았다. 당시 경제 표어로 지금까지도 가장 뇌리 깊숙이 남아 있는 건 '무턱대고 쓰고나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표어다.

정부가 3일 국무회의를 열고 35조3000억원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확정하고 4일 국회에 제출한다. 3차 추경 규모는 2009년 28조4000억원 추경 이후 역대 최대다. 앞서 올해 1·2차 추경 확정으로 23조9000억원이 편성됐고, 3차 추경안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모두 59조2000억원의 추경이 편성된다. 이 가운데 재원 조달을 위해 적자 국채를 발행액만 30조원이 넘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지난해 37.1%에서 올해 2차 추경 편성으로 41.4%로 올라갔고, 3차 추경까지 확정하면 43.5%로 치솟는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 정도 속도라면 오는 2030년 국가채무비율이 130%까지 기록할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이는 유럽재정위기를 겪은 이탈리아, 그리스와 같은 수준이다. 정부가 공식 통계로 내놓은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부채를 합한 것(D1)만 얘기하는데, 국제적으로는 여기에 공공기관과 각종 연금 충당액을 합한 일반 정부부채(D2)까지 합해 국가채무비율로 잡는다. 이렇게 따지면 올해 국가채무비율은 50%에 육박하고, 내년이면 50% 중반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지금 당장 급하다고 마구 돈을 빌려다 써버리면 가까운 미래, 이는 반드시 재정부담, 경제위기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항상 문제는 '부채'에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도 그랬고,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 모라토리엄 사태는 물론 최근 유럽재정위기 국가들도 항상 높은 국가 부채율이 문제였다.

각종 공적 기금이 말라간다. 건강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각종 기금이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 걸 모두 재정투입으로, 아니 국민 세금으로 메울 것인가. 이번 정권만 유지하면 그 뿐인가. 정권 잡았을 때 돈 풀어 민심, 표심 얻으면 그만인가. 돈 풀어 급한 불 끈 뒤, 다시 정권 잡으면 부채 문제가 해결되나.

재정을 풀어 경제적 부가가치창출 효과가 제대로 난다면, 즉 '재정 승수효과'가 제대로 나온다면 모르겠다. 재정 투입으로 새로운 산업이 형성되고, 더 큰 세수를 걷을 수 인는 기반이 만들어진다면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재정 투입은 대부분 그냥 돈을 단기적으로 뿌리는 수준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이란 명목으로, 노인 일자리란 이름으로, 한국판 뉴딜이란 이름으로 그냥 재정을 단기 처방으로 쏟아내는 것뿐이다. 미래 세대에 가난과 빚의 굴레를 물려줄 것인가. 아니면 건강한 대한민국 산업과 일자리를 물려줄 것인가. 지금도 우리 젊은이들은 스스로 '헬조선'이라 부르는 험악한 곳에 살고 있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이런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나만 아니면, 내가 집권하는 시기만 아니면 그만인가. 부채 폭탄 돌리기의 끝이 이번 정부만 아니면 그만인가.

출생아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사망자는 늘면서 올해 1분기에만 6000명의 인구가 자연 감소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자연 감소하기 시작한 인구는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감소할 전망이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우리 경제를 뿌리 채 흔드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급격히 줄고 있다. 이로 인해 오는 2030년 이후에는 경상수지가 늘상 적자인 시대로 전환할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명목 GDP는 38개국 가운데 10위를 기록했다. 전년 8위에서 두 계단이나 떨어진 것이다. GDP 순위가 하락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이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GNI)은 약 3만2000달러로 2017년 이후 계속 감소세다. 올해 자칫 2만달러 대로 주저 앉을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근본적 처방 없이 급하다고 미봉책만 쓴다면 미래는 없다. 급하더라도 '정도'(正道)를 생각하고 미래 세대를 고려해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란 옛말은 그냥 있는 게 아니다.

김승룡 정경부 차장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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