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윤미향이 100만원씩 줘 그게 무슨 돈인지 전혀 몰라 나눔의집 할머니들만 도왔다"
정의연 회계 투명성 문제 등을 폭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이 열린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새마을청년연합 관계자가 소녀상에 윤미향 구속 촉구 팻말을 놓기 위해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부근의 수요집회 벽화. 연합뉴스
"30년을 하고도 하루아침에 배신했다. 너무 분했다.", "국회의원인지 뭔지 자기 사리사욕만 채운 것 아니냐"
25일 이용수(92) 할머니는 기자회견에서 울분을 참지 못했다. 지난 1차 기자 회견 이후 눈덩이 처럼 불어난 각종 의혹의 당사자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이날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차분히 준비한 회견문이 있었지만, 이 할머니는 정의기억연대와 윤 당선인이 언급되는 순간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만큼 1시간여의 기자회견의 시간 속에 지난 30여년의 수많은 일들이 이 할머니의 뇌리를 스쳤을 것이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옛 정대협)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30년을 참았다"는 이 할머니의 말이 사실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다.
회견 중에 이 할머니는 정의연과의 생생한 기억들을 쏟아냈다. 이 할머니는 "1992년 6월 25일에 (위안부 피해를) 신고할 적에 윤미향 간사가 29일에 모임 있다고 해서 어느 교회에 갔다. 그 날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 후 1천엔을 줬다면서 100만원씩 나눠 주더라"며 "그게 무슨 돈인지 몰랐고 그때부터 (정대협이) 모금하는 걸 봤다. 왜 모금하는지 모르고 30년을 살았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 30년간 데모(수요집회)라는 걸 하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내가 바른말을 하니까 나한테 모든 걸 감췄다"며 "일본 정부가 낸 10억엔도 제가 알았으면 돌려보냈을 것이다. 자기들한테는 나눔의 집에 있는 사람만 피해자고 그들만 도왔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김복동 할머니에 대한 추억도 떠올렸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 1월 타계한 고 김복동 할머니를 언급하면서 "(정대협이) 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 잘해야 했는데, 고생시키고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들을 이용해 먹었다"고 질타했다. 그는 "(정대협이 김복동)할머니를 끌고 미국이고 어디고 끌고 다녔다"고도 했다. 이어 김복동 할머니의 죽음 등에 대한 이들의 눈물에 대해 "가짜 눈물이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것으로 검찰청에서 다 밝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할머니는 이렇게 복받치는 감정 속에서도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무엇인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할머니는 "한국과 일본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워 위안부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천년이 가도 일본은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억울하고 누명 쓴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은 우리 학생들뿐이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이어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양국 간에 친하게 지내면서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여자이기 때문에 위안부라는 누명도 쓴 것"이라면서 "세계 여성분들에게 피해를 끼쳐드렸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하다. 여성이라는 두 글자가 너무 미안하다"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