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 물량 일방적 취소 잇따라 이미 생산한 600억원어치 옷 미 백화점 폐점에 땡처리 신세 재고부담 이유로 거절하는 곳도 악순환속 국내산업 위축 우려
[디지털타임스 김양혁·김동준 기자] 글로벌공급망(GVC) 붕괴가 시작되면서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수출의 주춧돌 역할을 해왔던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두 자릿수나 뒷걸음질했다. 섬유 업종에선 2000억원 규모의 수주 계약이 증발했다. 수출 주요국이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여파로 문을 걸어 잠근 데다, 각국의 소비 위축 영향이 컸다.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는 제조업 특성상 불황의 시작은 곧 일자리 감소와 직결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GVC가 일시적으로 빚어진 코로나19로 사태가 장기적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우려했다. GVC 참여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날벼락'이나 다름없다.
◇'수출 주춧돌' 車·반도체 부진 심화…"車 안 받아요" = 19일 관세청과 산업통상자원부,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1~10일 국내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6.3% 줄어든 59억6000만 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주요 수출 품목 가운데 승용차는 80.4% 줄어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반도체 역시 17.8% 쪼그라들었다. 관세청은 "조업일수 변화 등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5월 1~10일 조업일수(5일)는 작년(6.5일)보다 1.5일 적었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코로나19 여파는 5월 들어 더 심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3월만 해도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은 휴대폰 수출에 힘입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감소세를 상쇄했다. 당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감소 폭은 각각 2.7%, 4.4%였다. 자동차의 경우 3월 수출이 소폭 늘기도 했다.
4월 들어 주요 수출 품목이 본격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등 우리나라 3대 ICT 수출이 모두 뒷걸음질했다. 반도체만 15.1% 줄었다. 자동차 수출은 44.3%나 빠졌다. 5월 들어 10일간의 집계이기는 하지만, 벌써 4월 감소 폭을 넘어섰다.
4월 부진은 예고된 바와 다름없다. 당장 수출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중남미, 인도 등 주요 시장은 한꺼번에 마비됐다. 인도는 아예 주민의 외출을 제한했다. 중남미와 중동 등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일부 해외에선 이미 쌓인 재고로 더 보관할 곳이 없다며 하소연을 했다"고 했다.
◇600억원치 옷 만들었더니…"일방적 취소, 땡처리할 판" = 미국 주요 유통망이 휘청거리면서 국내 의류업계는 4900만 달러(약 600억원) 규모의 의류를 '땡처리'해야 할 판이다. 지난 3월 콜스 백화점이 국내 중견 의류 기업으로부터 발주했던 약 1억60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사실상 파기하면서다. 콜스 측은 지난 3월 코로나19로 수요가 줄어든 점을 원인 삼아 기존에 맺었던 의류 계약 여러 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대금 지급을 늦췄다. 이에 국내 중견 의류 벤더 등 총 10여 곳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생산 전에 취소한 8500만 달러 규모의 주문은 그나마 사정이라도 나은 편이다. 콜스 측은 이미 만들어진 4900만 달러어치 의류에 대해서도 거래를 '홀드' 시켰다고 한다. 이는 고스란히 국내 업체가 재고로 떠안아야 할 판이다. 한 섬유업계 관계자는 "봄·여름을 노리고 만든 시즌 의류는 지금 안 팔리면 이후 제값을 받고 팔기 힘들어진다"며 "결국 창고로 들어가거나, 이후 땡처리 식으로 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내수가 아닌 해외를 겨냥해 만들어진 물량인 데다, 의류 생산 공장이 대부분 베트남 등 해외에 있어서다.
생산분을 6~8개월 이후 인수하겠다고 통보한 것도 2700만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한 의류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자금 흐름이 안 좋아진 중소 의류업체는 도산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예 기간을 정하지 않고 대금 지급을 연기한 부분까지 합하면 피해액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악화일로인 국내 의류업계에게 별다른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백화점들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줄줄이 파산 절차를 밟는 등 상황이 점차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서만 주요 백화점인 니만 마커스, 스테이지 스토어스에 이어 JC페니까지 파산 신청을 했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콜스, 메이시, 노드스트롬 등 다른 백화점들의 주가는 이달 중순을 기점으로 작년보다 60~70%가량 폭락했다. 의류 벤더 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 공동 대응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미국의류신발협회(AAFA), 미국패션산업협회(USFA) 등에 청원문을 발송했지만, 실질적인 답변은 듣지 못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