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삼성 현지생산 확대 압박 對中견제에 동참 요구할 가능성 中, 5년내 기술 자급률 70% 목표 자율주행차 등 新시장 판 바뀔 듯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미국의 압박과 중국의 추격에 끼여 '반도체 코리아'가 샌드위치 상황에 내몰리는 모습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자국 이기주의 무역 정책이 점차 현실화 하면서, 수출 비중이 90% 이상인 우리 반도체 업체들의 고민은 갈수록 더 깊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삼성·인텔·TSMC 압박하는 美 정부, "공장 지어라"= 1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의 현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라인 확대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보도에서 미국 정부가 인텔과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와 현지 반도체 공장 건설 방안을 협상 중이고,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공장의 확장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아직 미국 정부로부터 아직 공식적인 메시지를 받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삼성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현지 시장 상황을 고려해 증설 방안을 검토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미국 정부와 TSMC와의 협상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의 현지 파운드리 라인 증설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14나노(㎚) 핀펫 공정 등을 현지에 보유하고 있는데, 미국 내 극자외선노광장치(EUV)를 적용한 5나노대 라인을 신설할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을 압박할 경우 이를 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는 2019년 초소형전자공학(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공급사슬과 국가안보의 관련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대만, 중국, 한국을 전체 미국 디지털 경제의 의존성을 대변하는 3대 축이라고 지목했다.
이 같은 차원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들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군사 용도가 아닐 때 미국 기업이 허가를 얻지 않고 중국에 반도체를 수출하도록 하는 제도를 폐기했고,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TSMC에서 반도체를 만들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중국 반도체를 견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우리 업체들에게도 대중국 압박에 동참하도록 압박할 경우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미국 모두 우리 주력 수출 국가인 만큼 쉽게 어느 한쪽 편을 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나마 반도체의 경우 비관세 협정이 맺어져 있어 '반도체 코리아'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될 수 있었지만, 최근 화웨이의 5G 반도체를 두고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는 모습을 고려하면 이 역시 장담하기 어렵다.
◇메모리 이어 차량용 AI까지…中 반도체의 질주= 이런 와중에 중국은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자동차용 반도체까지 자급화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자동차(BAIC)의 투자 자회사인 BASI 캐피탈은 영국의 팹리스 업체인 이메지네이션 테크놀로지스(Imagination Technologies)와 지난 7일 자동차용 반도체 개발을 위한 합작사(JV) 설립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 합작사는 중국에 세워지고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과 음성 AI(인공지능) 칩 등의 연구 개발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양측은 전했다.
중국은 이 밖에도 반도체 코리아의 주력인 메모리반도체 자급화를 위한 투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기에도 공장 가동을 멈추지 않았던 칭화유니그룹 산하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128단 낸드플래시를 연내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올 하반기 17나노(㎚) D램을 양산하겠다고 홈페이지 등에서 공개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존재감 자체가 없었던 중국 반도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과의 격차를 2~3년 내로 맹추격하는 모습이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는 내용이 포함된 '중국제조 2025' 정책을 추진 중이고, 그 결과 중국의 50개 대규모 반도체 사업에 대한 총투자비는 약 2430억 달러(약 297조9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당장 한국을 추격하긴 무리가 있지만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이미 우리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경우도 있다"며 "이대로 가면 자율주행차와 AI 등 미래 신시장에서 중국에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중 간 갈등이 우리에게 압박이 될 수 있지만 역으로 잘 이용하면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성장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TSMC 등에 버금가는 기술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