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 이후 5년만에 사과
10년간 지속된 승계 논란 단절
향후 전문경영인체제 도입 시사
당초 '보여주기식 사과' 우려 불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내놓은 전격적인 사과문은 크게 '경영권 승계 포기'와 '노동3권 보장', 그리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지속적인 활동 약속'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하는 것은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책임과 관련해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사과한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 총수가 대국민 사과를 한 것도 1966년 이병철 창업주가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건희 회장이 2008년 차명계좌 의혹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이후 네번째이기도 하다.

◇10년 넘게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곤혹…'과거와의 단절' 결단= 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진행된 대국민 사과를 통해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다"며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못 박았다. 이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논란을 본인 대에서 끝내고 이후 대주주로 남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논란은 과거 2008년 삼성특검 사태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과정에서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으로 불똥이 튀면서 이 부회장이 1년 여 간 구속 수감되는 사상 초유의 '총수 부재' 사태까지 겪었다.

이 부회장은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본인 대에서 이 같은 악연을 끊지 않으면 안된다는 다짐을 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총수 리스크로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가치와 지속가능성에 흠집이 나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 이같은 결단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고의 인재 영입이 저의 사명"…경영능력 검증 의지도= 다만 이 부회장은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 이후 5년 여 동안 정리한 비전을 소개하며, 실력으로 인정받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며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윤택해지도록 하고,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삼성전자는 기업의 규모로 보나 IT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며, 성별과 학벌, 나이,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가 본인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그것이 바로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삼성은 계속 삼성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의 역할을 규정했다.

◇"노조 문제 진심으로 사과…노동 3권 보장하겠다"= 이 부회장은 이와 함께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공식 사과한 뒤,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삼성전자서비스 등 계열사 노조 와해 의혹으로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인 이상훈 사장 등 주요 핵심 경영진이 구속되는 등 사태가 커지자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 "무노조는 없다"고 약속한 것이다.

실제로 일부 언론 등에서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안 된다"고 다른 재계 총수가 한 발언을 고(故)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이 한 것처럼 오해하기도 했고, 삼성이 조직적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는 보도 역시 심심찮게 나왔다. 삼성은 수차례 노조를 제한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논란은 지속됐다.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준법감시위 상시 운영 약속= 이 부회장은 또 올 초 신설한 삼성 준법감시위의 상시 운영을 약속하며, 준법경영에 대한 강한 의지도 내보였다.

그는 "시민사회와 언론은 견제가 그 본연의 역할이고 기업 스스로 볼 수 없는 허물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며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라며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이어 "저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준법감시위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의 이번 기자회견 역시 지난 3월 준법감시위가 "총수 일가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 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해 이 부 회장이 대국민 사과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은 당초 이 부회장에게 11일까지로 시한을 내놓았지만, 이 부회장은 이를 6일 앞두고 전격적인 사과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다.

당초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 등은 이 부회장이 재판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 준법감시위를 '보여주기 식'으로 만들었다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이날 이 부회장의 기자회견 방식이나 파격적인 내용 등을 고려하면 이 같은 의심을 불식하기 충분했다는 재계의 평가가 나온다.

이 부회장은 끝으로 "최근 2~3개월 간에 걸친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서 진정한 국격이 무억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다"며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제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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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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