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020년 봄 '뉴노멀(New normal)'을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소환했다. 원래 뉴노멀은 채권회사 핌코의 최고경영자인 모하메드 엘에리언이 2009년 제시한 개념으로 세계 경제가 저성장·저금리·저물가의 새로운 시대로 돌입했음을 의미한다.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은 '언텍트(비대면)'이며 한은에겐 '전례 없는 통화정책'이 된다. 감염병 확산으로 소비가 얼어붙어 금융·경제 위기의 상황에 중앙은행이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통화정책인 '뉴노멀'을 선택한 것이다.
코로나 확산 이후 거시경제를 연구하며 조용하던 한은에게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최후의 대부자'가 되란 요구가 쇄도하고 있다. '전시'에 준하는 국가경제의 위기상황에 역할을 확대하란 주문이 쇄도하고 있어 한은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 그렇다고 한은이 가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달 26일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한국판 양적완화(QE)' 결정을 내렸다. 국내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발생한 2월 20일 이후 한 달여 만이다.
금융시장에 4월부터 6월까지 석 달 간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키로 했다. 한은으로선 가보지 않은 길이다. 3월 임시 금통위에선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연 0.75%로 내렸다. 기준금리가 사상 첫 0%대가 된 것이다. 이 역시 한은으로선 가보지 않은 길이다. 증권사 같은 비은행 금융사에 직접 대출하겠단 뜻도 밝혔다. 시장에 유동성을 넉넉히 공급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부는 재정을 퍼붓고 있는데 한은 금통위가 제때 발을 맞추지 않는다는 불만이 지속됐다. 전 세계와 우리 경제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데 중앙은행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비교대상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다. 'Fed는 하는데 한은은 왜 안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가장 직접적인 요구는 비우량 회사채에 대한 한은의 직접 매입이다. 미국 중앙은행처럼 한은도 투자부적격 기업들의 회사채까지 인수하란 것이다. 급기야 지난 22일 정부는 미 연준처럼 SPV(특수목적기구)를 설립하고, 저신용등급 회사채·CP(기업어음)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한국은행법으로는 한국은행이 직접 회사채를 매입할 수 없기 때문에 SPV를 추가로 설립하는 방안이 거론된 것이다. 그러나 매입 방안을 두고 논의 초반부터 기획재정부,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간 이견을 보일 조짐이다.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이 SPV를 세우면 한은이 SPV에 직접 대출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나, 한은은 SPV가 아닌 정책금융기관에 대출하는 SPV에 대한 간접 대출이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자금난에 막혀 기업은 쓰러지고 있는데 날 샐 거냐는 비판 속에 한은에서 가장 많이 낸 참고자료는 미 연준의 동향이다. 한은은 "기축통화인 달러는 Fed가 아무리 돈을 찍어도 달러가치에 큰 변동이 없다. 그러나 원화는 마구 찍으면 돈 가치가 떨어진다"고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
대신 한은은 계속해서 '중앙은행의 준재정적 활동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유동성 공급에 앞서 정부 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자칫 시장을 왜곡시키고 도덕적 해이를 부를 것이라고 한은은 완곡히 에둘렀다. 미 연준의 기업어음매입기구(CPFF)는 특정기업에 대한 구제금융이 아닌 시장 전반의 유동성 안전장치(Liquidity Backstop) 역할을 하고, 신용리스크 및 모럴헤저드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가 있다는 게 한은의 얘기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 후폭풍을 최소화하겠다며 경쟁하듯이 돈을 풀고 있다. 저금리 시대에 갈 곳을 잃고 풀려 있는 엄청난 유동성에 코로나 사태로 더 많은 유동성이 살포되고 있다. 금융당국과 한은이 저신용 회사채·CP를 매입할 때 매입기구의 구조, 매입 범위를 놓고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당사자들은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뛴다. 가보지 않은 길을 어디까지 갈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뚝뚝 떨어지는 성장률에 극약처방을 하면서도 자산거품 부작용을 최소화 할 길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