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으로 방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100여 개국에 중국산 마스크와 감염 진단 키트를 대량으로 기부하면서 생색을 내려다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전달한 마스크와 진단 키트에서 불량품이 발견돼 리콜한 것이다. 생색내려다 망신 당할 처지에 놓인 게 비단 중국만은 아니다. 지난 4·15 국회의원 총선거에 앞서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가구 당(4인 기준) 최대 100만원씩 지급하겠다며 공언한 정부를 비롯해 모든 가구에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한 여당(더불어민주당)을 두고 하는 소리다.
정부는 지난 4월 초 소득 하위 70% 이하 약 1400만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올해 3월에 낸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1인 가구는 40만원, 2인 가구는 60만원, 3인 가구는 80만원, 4인 이상 가구는 100만원 상당의 전자화폐, 지역사랑상품권, 선불체크카드 등을 지급키로 했다. 다만 재산세 과세표준 합산액이 9억원을 넘거나 금융종합소득세 부과기준이 되는 금융소득 연 2000만원 이상 가구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이러자 "나도 세금 내는 국민인데,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는 게 말이 되냐", "맞벌이 부부도 살기 힘든데 지급 대상에서 빠진다", "건보료 지역가입자인 영세 자영업자들은 폐업하게 생겼는데, 재난지원금 받지 못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등 온 나라가 재난지원금 가지고 설전에 빠졌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이 때다 싶었을 게다. 여당은 총선 공약으로 전 국민에 100만원 지급을 약속했다. 제1 야당인 미래통합당도 전 국민에 5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총선이 끝난 이튿날 정부는 당초 소득 하위 70% 안대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위해 7조6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재난지원금은 2차 추경 7조6000억원에 지방비 2조1000억원을 합쳐 모두 9조7000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총선에서 압승한 여당은 총선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추경 규모를 4조원 가량 더 늘려 모든 가구에 최대 1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며, 당초 안을 고집한 홍남기 부총리를 향해 "공무원이 정치하지 말라"며 윽박질렀다. 총선에서 대패한 미래통합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자국채까지 발행해가면서 부유층에 재난지원금을 줄 필요는 없다며 돌연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정부, 여야가 재난지원금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코로나19 타격에 국민들 시름은 더 깊어만 간다. 정부와 정치권은 늦어도 5월에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이젠 언제 지급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참 웃지 못할 블랙 코미디다.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것 자체가 정치적 쇼이고, 국민에 생색내기 위한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 국민으로부터 거둔 세금을 정부가 다시 재난지원금이란 이름으로 나눠주겠다는 것인데, 애초부터 국민에게 재난지원금만큼의 세금을 깎아주면 될 일이다. 세금을 거둬 나눠주나, 세금을 덜 받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예를 들어 모든 국민에 재난지원금 혜택을 주고 싶다면 소득세를 일정 비율로 깎아주면 된다. 많이 벌어 소득세를 많이 내는 사람은 덜 깎아주고, 적게 벌어 소득세를 조금 내는 사람은 많이 깎아주면 될 일이다.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조금 더 강화하는 수준에서 도와주면 된다. 코로나19로 타격이 심한 서비스업종을 포함해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도와주고 싶으면 이들로부터 서비스나 제품을 구매하면 부가가치세 등을 깎아주거나 한시 면제해주면 된다. 더 싸게 살 수 있으니 소비자도 좋고, 장사가 되니 사업자도 좋다.
이렇게 하면 괜시리 불필요한 논란이 불거지지도 않을 뿐더러, 직접적으로 국민 모두에 소득 증대 효과를 줄 수 있다. 이렇게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정부와 정치권은 왜 굳이 '긴급재난지원금'이란 이름으로 돈을 나눠주고 싶어한 것일까. 간단하다. 정부는 국민에게 위기 때 보호해준다는 생색을 내고 싶은 것이고, 정치권은 표를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국민 세금 가지고 온갖 생색내려다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긴급히 돈을 주지 못할 상황에 처했으니, 이야말로 '웃픈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인가.
설령 가구당 100만원을 준다고 해도 과연 침체한 소비가 엄청나게 살아날까. 당장 폐업에 몰린 자영업자에 100만원 준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주려면 적어도 6개월 간 매월 100만원은 줘야 그나마 생계에 보탬이 될 거다. 주는 것도 현금이 아니고 2~3개월 한시적으로 쓸 수 있는 지역상품권이나 전자화폐, 선불카드 등으로 준다고 하는데,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생색내기에 골몰할 게 아니라, 당장 나락으로 떨어질 국가 경제를 어떻게 살릴지에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