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 확대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를 고수하고 있고, 여당은 모든 국민에 지급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적자 국채 발행 여부다. 곳간 지기인 정부는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적자 국채 발행 없이 전액 지출 구조조정과 기금 재원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앞서 밝혔다. 그러나 여당 요구대로 모든 국민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면 적자국채 추가 발행이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 늘어나는 추가 재원은 3~4조원 규모다.
21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6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소득 하위 70% 이하 1478만 가구(4인 가구 최대 100만원)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7조6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추경안을 늘려 모든 국민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이 정부를 압박하는 이유는 정부 동의 없이 추경 예산 증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57조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용명세(비목)를 설치할 수 없다. 국회가 정부가 짠 예산을 삭감할 수는 있지만, 예산을 증액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는 뜻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 대해 '부(不)동의권'을 행사하며 저항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과 경제계에선 정부의 반기를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정치권 합의안에 대해 부동의 카드를 꺼낸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15~2017년까지 3년간 지속된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안이다. 당시 정부는 예비비를 통해 누리 과정 예산을 연간 5000억원 가량 지원했다. 여야는 2017년 합의를 통해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예산 5000억원을 추가해 총 1조원을 지원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2000억원만 추가 지원할 수 있다며 정치권 합의안을 거절했다. 당·정·청 간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고 결국 최종안은 당의 승리로 끝났다. 정부는 한 발 물러서 누리과정 예산 1조원에서 4000억원 삭감을 요청했지만 이 안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단독으로 예산안 증액을 거부했던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정적자를 우려해 선별적 복지를 지지하지만 결국 정부가 당에 양보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익명의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올해 총선에서 압승한 여당이 선별적 복지를 추진한다면 국민으로부터 거센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며 "결국 여당에서 정부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예산 법률주의 도입 움직임이 다시 일어날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예산 법률주의는 국회가 예산과 재정에 관한 일체의 권한을 갖는 것으로 정부의 동의권을 삭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2017년 박근혜 정부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주요 부처 예산안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의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회에 편성권을 주면 쪽지예산(정식 편성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역구 민원 예산을 동료의원이나 예산당국에 부탁하는 것)만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가 강하게 반발해 최근 이와 관련된 논란은 잠시 수그러들었다. 이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는 "정부가 부동의권으로 사사건건 반대하면, 정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성승제기자 bank@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