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도 전에 또 터지는 식상한 이벤트가 됐다. 증권사의 전산장애가 그렇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로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증권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연일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키움증권 HTS에서는 자동일지 잔고 표시가 정상적으로 조회되지 않았다. 이 일이 있기 하루 전 키움증권은 고객 게시판에 "실시간 잔고 지연으로 자동일지 데이터가 정상 조회되지 않을 수 있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당일 시스템 개선 작업에도 먹통 사태는 수일에 걸쳐 간헐적으로 반복됐다. 이 회사는 지난달 주식시장 거래대금 점유율이 23%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이날 하루에만 10% 넘게 폭등하며 장을 마쳤다. 3월 한 달 신입 개미들의 계좌개설 건수만 43만개를 웃도는데 이 또한 역대 최대다. 지난 1월 기록한 종전 최대치는 14만3000개로 그 3배가 넘는다.
키움증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달 25~27일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투자 열기로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여러 증권사의 MTS에서 접속 폭주로 잇따라 장애가 발생하며 투자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신한금융투자 MTS의 경우 개장 직후 약 5분간 지문 등 바이오인증 방식 로그인이 작동하지 않았다. NH투자증권도 자사 MTS '나무'에 접속이 몰리면서 잔고 확인이 안 되는 오류가 10분가량 발생했다. SK증권은 지난달 11일 개장 후 약 3시간 정도 MTS 신규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가 발생했고, 주문 체결과 잔고 조회 등이 일부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선기반인 HTS와 달리 무선네트워크인 MTS의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데 증시에 새로 뛰어드는 젊은 개인 투자자들이 주로 MTS를 쓰다 보니 MTS에 접속이 몰려 장애가 발생한 것 같다는 게 이들 증권사의 설명이다. 실제 3월 한 달 주식거래 활동계좌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동시다발적으로 MTS 장애사고가 터진 사흘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는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며 역대 최대치를 매일 갈아치웠다.
증권사 전산장애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21개 증권사 분쟁조정 신청(반복건 제외)은 총 862건에 달했다. 하루 2.4번 꼴로 분쟁이 터졌다는 건데 이는 전년(485건)의 77.7% 급증한 규모다. 연이은 MTS 전산장애가 분쟁건수 증가를 주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주문 매체별 주식거래 비중에서 MTS는 40%를 넘어 활용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HTS는 사상 처음 30%대로 떨어졌다.
MTS를 이용한 투자가 HTS보다 보편화된 만큼 전산장애를 다스릴 추가 대책이 시급해 보이는 대목이다.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매수·매도를 하지 못하면 자칫 투자자들이 회복 불가능한 만큼의 피해를 입을 수 있어서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계속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업계는 '디지털금융' 혁신을 화두 삼은지 벌써 여러해다. 그럼에도 전산장애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는 건 그간 각 사의 대처가 얼마나 즉흥적이고 안일했는지를 자인한 셈이다. 비대면과 모바일 방식의 서비스 제공이 확대되는 추세를 따르지 못한 결과기도 하다.
증권사 전산사고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 몫이 된다. 장애의 원인이 무엇이든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후진적인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의 전산시스템을 개선해야만 자본시장 선진화를 말할 수 있다. 업계도 이를 모르는 바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문제가 해결되고, 증시가 안정을 되찾기 전까지 저가매수를 하는 투자자들은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서버 증설 등을 통해 MTS·HTS에 대한 투자자들의 안정성을 확보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증권사들은 이제라도 IT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거래수요를 안정적으로 받아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고객기반 유지에 있어 최우선돼야 할 부분이다. 덮기만 해선 실패는 반복된다. 그간 발생한 장애를 단순 실패로 보지 말고 원인을 면밀히 분석한다면 성공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길 바란다. 신뢰 없인 고객도 없고, 고객 없인 회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