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9조1000억원)을 사용기한 3개월짜리 지역상품권과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로 하였다. 지난 3월 30일 정부는 '소득 하위 70% 이하 1400만 가구에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이라는 지원기준을 발표한 바 있으나 보건복지부가 가계통합데이터를 중심으로 기준점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관련 2차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통과 절차도 거쳐야하기 때문에 실제 지급은 5월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국 긴급재난지원금이 최단시일내에 공급되지 못하는 정책실패가 반복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의 소득 하위 70%에 대한 가구당 100만원 지원'은 4·15 총선 대책으로 '졸속 성안' 되어 '지연 집행' 되는 대표적인 정책 실패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겠으나 문제는 어떻게 최단 시일내에 예산을 조달하여 집행할 것인가를 정부는 보다 심사숙고 했어야 했다. 정부는 현재의 야당들과의 협의체 구성부터 서둘러서 어떻게 예산조달과 집행을 서두를 수 있는지를 논의했어야 했다.

이 모든 정책성안과 집행의 과정을 보면 현 정부의 위기대응능력이 한계에 도달하였음을 알수 있다. 실제로 정부내에서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재원조달과 집행방법에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4·15 총선을 눈앞에 둔 당정협의에서는 가능한 많은 표심을 향해 쫓기듯 성안, 발표한 대책으로 보인다. 그렇게 성안되고 발표된 대책치고는 실제로 가장 중요한 집행 시기가 5월 이후로 늦추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여 선거전시용 정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제1야당인 한국당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제시한 대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같이 이마를 맞대고 공동대책안을 성안하는 포용적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한국당의 대안의 핵심은 올해 우리나라 정부 예산 512조원의 20%인 100조원 규모의 재원을 예산항목변경으로 '코로나 비상대책' 예산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임기종료 직전 임시국회를 개최하여 헌법 56,57조가 규정하고 있는 예산재조정을 의결하여 4월 말 이전에 바로 집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추가 예산조달이 필요하면 국채를 발행하되 1000조원이 넘는 시중 부동자금을 2~2.5%의 상대적 고금리로 흡수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방안은 이번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에서 제외되는 소득 상위 30%에게도 국난 극복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국채 매입에 우선 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100조원 규모의 초단기 긴급재난지원금도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지원과 신규 실업자들에 대한 생계지원이 훨씬 효율적인 지원대책이 될 것이다.

이번의 정책실패, 특히 집행 시기를 놓치는 정책집행 지연의 사례를 복기해야 하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가 일반적 예상보다 훨씬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그동안 몹시 미워해 온 민주당을 끌어들여 미국 GDP(20조 달러)의 10%를 넘어서는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2조2000억 달러의 복합 재정지원안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승인한 지원규모안 8000억 달러의 3배에 도달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복합재정지원안의 구성을 보면 (1) 3500억 달러의 소기업 지원 융자, (2) 5000억 달러의 항공산업 및 피해 대기업 지원, (3) 실업수당의 추가 지원, (4) 의료 지원, (5) 개인소득 7만5000 달러, 부부소득 15만 달러 상한으로 성인 1인당 1200 달러, 아동 500 달러를 지원하는 생계비 지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 특히 미국 내에서의 감염자 급증사태는 향후 세계 경제의 회복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미국연방준비위원회의 버냉키(Bernanke) 전 의장은 미국 경제가 V자형의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비교적 낙관적 전망 이후에도 미국의 감염자 수는 계속 급속히 증가하였고 지역도 확산일로에 있다. 따라서 뉴욕대의 루비니(Rubini) 교수는 급전직하의 I 자형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현재의 국내외적인 코로나 확산 추세를 감안할 때, 짧은 L자형 경기회복 전망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V자형처럼 빠른 경기회복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사례처럼 모든 판데믹(Pandemic)도 결국은 일정 시점에 소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머 교수의 제안도 우리가 고려해보아야 할 정책대안의 하나이다. 그는 '제한적인 사회적 거리유지'(limited social distancing)와 '부분적 봉쇄조치'(partial lock-down)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로머 교수는 "1년 후가 되면 우리는 살아있을지 모르나 경제는 다 죽어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코로나19 감염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은 사무실이나 일자리로 먼저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검사를 통과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갖는 3~4명 규모의 모임은 허용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제안과 비슷한 정책을 이미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스웨덴이라고 한다. 스웨덴에서는 식당, 카페 등 상당수의 시설이 아직도 3~4명의 모임을 수용하면서 활발하게 영업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도 집단감염 사태나 외국으로부터의 감염자 유입사태의 와중에 있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학생들의 개학 조치에 앞서 전체 학생들에 대한 감염 테스트를 실시하고 이를 통과한 학생들에게 개학을 허용하는 방안을 채택해야 한다. 이러한 학생, 근로자 및 공무원에 대한 감염 테스트에 소요되는 비용이야말로 국가가 선심성 긴급재난지원에 앞서 확보하고 실시해야 하는 사회적 투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 대책도 일회성으로 끝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중장기적인 시각에서의 재원조달과 집행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의 상하 양원은 현재의 코로나19 확산사태를 감안할 때, 이미 2조2000억 원의 재정지원으로는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제2차 지원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우리 정부도 보다 지속가능한 제2차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야당의 협조를 구하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필수적인 절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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