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설립돼 올해 36주년을 맞은 SK텔레콤이 1990년대 민영화를 시작으로 2G부터 5G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이동통신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이동통신의 역사라 할 만큼, SK텔레콤은 시장과 기술발전을 선제적으로 이끌어 왔다.
◇이동통신 대중화 시대를 열다=1984년 3월 통신공사의 자회사로 첫발을 내디딘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차량전화 및 무선호출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대한민국 이동통신 시장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1988년 4월에는 공중전기사업자로 지정, 한국이동통신으로 거듭나면서 독립사업자로 새 출발했다. 한국이동통신은 독립사업자로서 빠르게 기틀을 잡아가는 한편, 88서울올림픽을 맞아 휴대용 이동전화서비스를 선보였다.
1990년 전후로는 통화품질 면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이동통신은 각종 장비 국산화와 운용 기술 자립을 이끌며 국내 이동통신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91년 12월에는 100만가입자를 돌파하면서 이동통신 대중화 시대를 활짝 열 수 있었다.
1990년대로 진입하며 한국이동통신은 국내 통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1994년 1월 공개입찰을 거쳐 선경그룹(현 SK그룹)에 인수, 민영화됐다.
◇ 합법 절차 · 공정 경쟁에도, 반대 여론에 막혀 자진 반납=선경그룹은 故 최종현 회장의 확고한 의지 하에 1980년대부터 이동통신 사업을 준비해왔다. 최종현 회장은 1980년 11월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한 이후 다음 단계의 장기 경영목표를 정보통신사업 진출로 정하고, '2000년대 세계 일류의 정보통신기업'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1986년 미주 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발족하고, 미국이 보유한 정보통신 관련 정보와 기술을 습득케 했다. 또, 1989년 10월에는 미국 뉴저지 주에 현지법인 유크로닉스를, 1990년에는 선경정보시스템을, 1991년에는 선경텔레콤(1992년 대한텔레콤으로 사명 변경) 등을 연이어 설립하며 정보통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1992년 체신부의 1, 2차에 걸친 심사 결과 1980년대 중반부터 정보통신사업 진출 준비를 해오고 있었던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이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됐다. 선경 · 포철 · 코오롱 · 쌍용 · 동양 · 동부 등 6개 그룹의 치열한 각축 속에서 선경이 정당하게 제2 이동통신 사업권을 받은 것임에도, 정치권에서는 논란이 제기됐다.
특히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 김영삼 대표는 노태우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고 대국민 선언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하는 등 선경그룹의 제2 이동통신 사업권 획득에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1992년 8월 선경그룹은 일주일 만인 27일 반대 여론을 감안해 사업권을 자진 반납한다.
◇ YS 정부때 재도전...이동통신 시장 진출=선경그룹은 이미 확보한 사업권을 자진 반납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4년 공개 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경영권을 확보한다.
일각에서는 노태우 정권때 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했다는 오해가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선경그룹은 이통 사업권 확보에 반발한 민자당 김영삼 대표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해 시세를 웃도는 가격으로 경영권을 인수했다. 제2 이동통신 사업권은 신세기통신(포철-코오롱)이 가져갔다. 특히 선경그룹은 1주당 8만원 대에 불과했던 한국이동통신 주가가 공개매각 방침이 발표된 이후 급등한 상황이었지만, 시세보다 훨씬 비싼가격으로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확보했다.
선경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이 한차례 불발된 이후 YS 정부(1993.02~1998.02)는 공정한 제 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위해 전경련에 단일 컨소시엄 구성을 맡기고,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던 최종현 회장은 선경그룹이 제2 이동통신 사업에 참여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일 수 있다며 1992년 사업권 반납 결정에 이어 다시 한번 대승적 차원에서 불참키로 결정했다. 대신 막대한 인수 자금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선경그룹은 1994년 1월 공개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확보하고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했다. 이를 통해 1980년대 말부터 국내 통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해온 정부의 이통시장 경쟁 도입은 마무리됐다.
◇ 대한민국 이동통신을 대표하다 =민영기업으로 새 출발한 한국이동통신은 1996년 1월, 세계최초로 CDMA(2G) 디지털 이동전화를 상용화하면서 세계 이동통신사에 큰 획을 그었다. CDMA 방식은 이후 세계 표준으로 확산되면서 CDMA 기술 종주국으로서 한국 이동통신의 위상은 더욱 강화됐다.
1997년 3월에는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마켓 리더십 강화로 경쟁사업자를 따돌리면서 국내 이동통신 대표주자로서의 면모를 굳건히 했다. SK텔레콤은 1999년 7월 업계 최초로 신세대 전용 이동전화 브랜드인 'TTL'을 출시하면서 이동전화 서비스 마케팅의 신기원도 열었다.
또한, 인터넷 PC통신을 연동한 다양한 부가 서비스 개발에 주력해 1997년 8월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신개념의 PC통신 넷츠고 서비스를 개시했다. 또한 음성 위주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이동통신이 진화하는 시대에 대비해 1999년 8월 무선으로 최고 114Kbps를 구현하는 IS-95B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제공하고 12월에는 무선 데이터서비스 엔탑을 출시했다.
2000년 1월에는 이동환경하에서 국가간 IMT-2000 시험통화에 성공했으며, 2000년 10월에는 세계 최초로 CDMA2000 1X 상용서비스 개시, 2002년 1월에는 동기식 IMT-2000 (CDMA2000 1X EV-DO) 상용서비스도 개시하면서 유비쿼터스 시대를 앞당겼다. 2002년 11월에는 CDMA2000 1X EV-DO 망을 통한 멀티미디어 서비스인 '준'을 제공하면서 유무선 멀티 미디어서비스를 강화하고, 유무선 통합 인터넷 서비스인 '네이트'도 탄생시켰다. 김은지기자 kej@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