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철 빗썸코리아 신사업개발실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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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 국민학생의 기피 대상이었던 호환마마 같은 것들이 바로 게임, 만화, 춤, 노래, 비디오였다. 박멸해야 하는 바이러스 정도로 취급 받던, 공부 안하는 문제아들이 숨어서 즐겨야 했던 것들이 지금은 세계를 주름잡는 한국의 주요 산업이 되었다. 게임은 수출 효자산업이 됐고, 웹툰은 일본에 역수출하고 있으며, 싸이와 방탄소년단, 봉준호 감독은 전 세계에 한국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가상자산을 바이러스로 간주한다면, 한국은 코로나19 사태처럼 전 세계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만큼 잘 대응했다. 잠시 세계 1위를 점유했던 국내 가상자산 기업들은 이제 미국 중국 싱가포르 업체에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으며 징벌적 과세나 숨막히는 규제로 인해 존폐 기로에 놓였다.

구한말 서구 열강과의 접촉처럼 낯선 외부의 방문자에 대한 알레르기 거부 반응은, 수천 년 단일 민족으로 존재한 공동체의 역사적 필연일 수 있다. 이러한 단일민족의 강력한 공동체 문화는 산업의 영역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한국의 건설업과 조선업을 비교해 보자. 전세계 1위부터 7위가 모두 한국 조선사였던 시절이 있었던 반면, 한국 건설사는 단 한 개의 업체도 세계 10위권 안에 들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단순하게 보면 건물과 선박은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라는 측면에서 만드는 과정이 매우 흡사하다. 결정적 차이는 최종목적물이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선박은 한국 땅에서 한국 시스템으로 만들어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하면 되지만, 건물은 해외 현지에서 밸류체인을 새로 구성해야 한다. 해외 현장에서 한국인은 관리자로서의 역할만 할 뿐 대부분 현지업체에 하청을 주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들에 일을 맡겨야 한다. 신대륙을 개척하거나 식민지를 경영해 본 경험이 없는 우리가 보유하지 못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조선업에서 극강의 효율을 창출한 우리의 공동체문화가 건설업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이유이다.

전 세계의 칭찬을 받는 코로나 대응처럼,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확보한 조선업처럼 우리끼리 똘똘 뭉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자랑스러운 성공사례를 창출해왔다. 반면, 스스로 외부를 개척하거나 신대륙과 새로운 시장이 열렸을 때 세계인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의 기회는 많지 않았고 그만큼 성공사례가 드물다.

아주 잠깐 우리에게는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산업이라는 신대륙을 석권할 수 있었던 윈도우가 있었다. 2017년, 2018년 초반 한국 기업들은 미지의 신대륙 향(向) 개척 선단의 최선두에 위치했다. 전 세계의 에반젤리스트와, 창업가들,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자본들이 전례없는 규모로 한국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과 연대하고 연결하고 인프라를 제공함으로써 블록체인이라는 전대미문의 신대륙에 한국의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구한말 우리의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아쉽게도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산업이라는 새로운 가능성과의 조우에서 우리의 선택은 공포와 패닉으로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의 게임산업은 지금의 가상자산 업계처럼 대우 받았다.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한국의 게임업계가 시도할 수 없던 틈새 수익모델을 가지고 중국의 사설 업자들이 돈을 벌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한국 게임을 수입하던 업체 중의 하나가 지금은 글로벌 최대 게임사 텐센트이다. 당시 텐센트의 온라인 게임사들로부터 게임을 받으려고 거의 '을'을 자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절 리니지 공장을 돌리던 업자들은 이후 비트코인 채굴업체 등으로 진화해 현재 중국의 4차 산업을 리드하고 있다.

최근 게임업계의 텐센트처럼 공룡이 되어 버린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가 한국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바이낸스는 가상자산 산업과 기존 제도권 금융이 융합되는 신대륙 향 항로에서 이미 국내 기업들이 범접할 수 없을 만한 규모와 속도로 뻗어나가고 있다. 한국 업체들은 규제에 꽁꽁 묶인 채 그들의 '무용담'을 바라만 보고 있다.

지금 이시점에서 정부 당국자들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가상자산은 박멸해야하는 바이러스인가. 아니면 개척해야 할 신대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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