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의 신호탄과 같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허사가 될 위기에 놓였다.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등장으로 이미 절반의 힘을 잃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더불어민주당까지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카드를 꺼내면서 남아있던 절반의 힘마저 잃게 생겼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일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열고 비례대표용 연합정당에 참여할 지 여부를 정당원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민주당이 비례대표용 연합정당이라는 허울의 위성정당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21대 국회에서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최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대외비 보고서를 살펴보면, 4·15총선을 위성정당 없이 치를 경우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 47석 가운데 6~7석을 얻는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미래한국당은 절반이 넘는 25석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 지역구 선거 결과에 따라서 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의 의석을 흡수해 원내 제1당 지위를 차지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반면 민주당과 정의당이 별도의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연합정당에 참여해 선거를 치른다면 연합정당은 22석, 미래한국당은 18석 가량 의석을 나눠갖게 된다. 민주당은 연합정당으로 진보성향의 지지자가 결집해 미래한국당을 견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래한국당의 의석을 20석 이하로 저지한다면 원내 제1당 지위는 민주당이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계산이다.
민주당이 원내 제1당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가는데 필수요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통합당이 검찰의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를 빌미로 문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언급한 뒤 코로나19로 민심까지 악화하면서 탄핵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코로나19 대응을 문제삼으며 문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청원이 146만9000여명의 동의를 얻었고,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도 문 대통령 탄핵 청원이 성립요건인 10만명의 동의를 충족해 국회 심사·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민주당은 통합당이 원내 제1당이 된다면 실제로 문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불안해하고 있다. 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창당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던 민주당의 입장이 바뀐 결정적 이유다.
민주당은 통합당이 정치개혁의 대의를 품고 있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하는 '꼼수'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었으니,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연합정당은 불가피하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대신 민주당은 연합정당에서 민주당 몫의 비례대표를 후순위에 배치해 정의당 등 군소정당을 전략적으로 배려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아무리 민주당이 합리적 선택으로 포장을 잘한다 해도 정치개혁보다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최고위에서 연합정당 참여 여부를 결론 내지 못한 것도 스스로 그런 한계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내부에서도 연합정당이나 위성정당에 반대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지도부의 결단만으로 연합정당을 강행한다면 모든 책임을 지도부가 져야하는 부담감을 무시하기 어렵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이날 최고위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안의 중대성과 무게감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말 민주당이 연합정당 외에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보면 선뜻 납득이 안 된다. 정의당이 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 이상, 연합정당은 민주당의 위성정당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연합정당을 만들어 민주당이 원내 1당을 사수한다 해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되레 자승자박이 된다. 정의당뿐만 아니라 군소정당과 손잡을 수 있는 정당성을 민주당 스스로 차버린 셈이 되는 까닭이다.
민주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고전할 것이라는 예측도 아직 이르다. 민주당이 미래한국당의 등장에도 나름 태연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호남 등 지역구 선거의 자신감 때문이었다. 호남 28석 중 20석 이상만 확보해도 민주당으로서는 현재 의석보다 15석 이상 늘어나게 된다. 여타 지역구 선거에서 현상유지만 할 수 있다면 위성정당 없이도 해볼 만한 정면승부가 된다. 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더라도 민주당이 정공법으로 대응하길 기대한 게 무리였나 한숨이 나온다. '무슨 정치판에서 공자를 찾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의당도 설득하지 못하는 얄팍한 명분으로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지 민주당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