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저녁 7시 20분. 기획재정부가 기자단에 수정 보도계획 메일 한 통을 발송했다. '마스크 시장 안정화를 위한 수급 대책' 자료를 4일 일정 보도계획에 추가했다는 내용이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의 브리핑 일정도 포함됐다. 이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마스크 대란을 해결하고자 정부가 현재 50%인 마스크 공적 판매 비율을 최대 80%로 높이겠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라 김 차관의 브리핑 일정은 기자들의 관심을 사는데 충분했다.
일부 기자들은 김 차관의 브리핑 일정을 미리 보도해도 되는지 재차 확인까지 했다. 정부가 마스크 공적 판매 비율을 높일 것인지,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인지 4일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뉴스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을 터다. 그런데 2시간이 흐른 9시50분께 기재부가 수정 보도계획을 다시 발송했다. '마스크 시장 안정화를 위한 수급 대책' 보도계획이 취소됐다는 내용이었다. 김 차관 브리핑도 당연히 취소됐다. 자료에 이유는 짧게 언급됐다. 관계부처 등과의 추가 협의가 필요해 연기됐다는 것이다. 이미 시점에 대해 보도 한 일부 기자들은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된 셈이다.
기재부의 어설픈 해프닝은 갑자기 왜 벌어진 것일까. 이는 청와대와 관련이 깊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속되는 마스크대란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장관들에게 "대단히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해법은 찾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질타했다. 결국 대통령 말 한 마디에 부랴부랴 설익은 대책이라도 내놓으려고 했지만 관계부처의 이견으로 끝내 합의를 조정하지 못해 일정을 취소한 것이다.
정부정책 혼선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달 27일 사전 예고 없이 코로나19 대응 관련 자료가 나와 기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마스크 대책 관련 대책안에 소상공인을 위한 '임대료 지원 3종 세트' 정책이 담겨 있었다. 사전에 예고되지 않았을뿐더러 자료도 홍 부총리 브리핑과 비슷한 시간대에 배포돼 기자들은 뒤늦게 내용 분석과 함께 속보 전쟁을 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이번 정책도 마스크 공급 대란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자, 정부가 급하게 임대료 지원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여론의 눈치에 못 이겨 급하게 발표한 정책인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탁상공론으로 지적받는 정책도 아쉬움이 크다. 대표적인 예가 KTX 할인권과 한국형 체크바캉스다. 정부는 코로나19로 KTX 이용객들이 크게 감소함에 따라 서울-강릉선 KTX 요금을 최대 54% 깎아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인 중국인 유학생이 강릉선 KTX를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요금할인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실제 정부세종청사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KTX 통근을 하는데 지금은 업무를 위한 외부 출장조차 꺼리는 상황이다.
한국형 체크바캉스 역시 마찬가지다. 체크바캉스는 국내 관광 시 정부가 근로자 휴가비를 매칭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이 근로자에게 휴가비 10만원을 지급한다면 정부가 동일한 금액인 10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제도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침체된 내수를 살리겠다고 이 방안을 도입할 예정인데, 당장 방역체계가 뚫린 상황에서 누가 휴가를 떠나겠느냐는 지적이 많다.
엄중한 시기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나고 있고 우리 경제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내수 침체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더 암울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올해 2분기까지 갈 것으로 전망한다. 만약 전망이 맞다면 우리 경제는 장기전에 대비야 한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허둥지둥 설익은 대책을 만들어 '정치적 쇼'를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위기일수록 오히려 더 신중하고 꼼꼼하게 살펴 추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며칠 전 지방에서 유통업을 하는 지인에게 안부 차 전화를 했다. 최근 업황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심각했다. 코로나19로 1억원이 넘는 매출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거래처가 대부분 문을 닫아 앞으로 피해는 더 커질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도 하남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또다른 지인도 마찬가지였다. 2주간 학원 문을 닫아 백수 신세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건물주로부터 임대료 인하 얘기는 전혀 못 들었다고 했다. 코로나19 위협이 바로 내 곁에 와있다. 서민, 자영업자들이 의지할 데는 이제 정부가 발표한 대책 뿐이다. 정부의 리더십을 다시 한 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