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이번엔 조금 어렵겠는데요. 1월 말 단기 조정으로 끝난 뒤 회복할 거란 전망을 냈다가 헛다리라고 호되게 까이고 있어요. 전망하기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게 사실이예요."(A 증권사 연구원, 2월27일)

코로나19 악재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로 변동성이 큰 장세가 이어지면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주가 예측 기피증 현상이 감지되는 분위기다. 숫자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방향성조차 예측하기 힘든 장세가 이어지면서다. 실제 일부 증권사들이 '코로나19는 오래 안 간다', '1월 말 단기 조정에 그친다'는 낙관론을 펼쳤다가 여론의 호된 뭇매를 맞았다. 과거 사스나 메르스 사태 당시보다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과 더불어 막연한 공포감을 경계하란 주문도 더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증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자 이들 증권사들은 머쓱해졌다. 요원한 주가 회복에 예측이 어긋나자 소신을 밝히기 어려워진 모양새다. 코로나19 충격이 외환위기급 공포에 버금갈 것이란 예측을 내놓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누가 봐도 당혹스러울 정도로 급진적이었으니 말이다. 글로벌 증시는 사경을 헤맸다. 그러는 사이 글로벌 증시서 증발한 자금만 7300조원에 육박했다. 국내 증시도 폭락을 면치 못했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공포가 극에 달했던 2월의 마지막 날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55조원 넘게 증발하기도 했다.

문제는 증권사의 예상치를 믿고 투자했다가 꺾인 주가에 시달리는 개인 투자자다. 증시가 급락하는 동안 손실을 떠안고 있는 건 역시나 개미였기 때문이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던진 매물을 받아들고 속절없이 떨어지는 마이너스 수익을 보며 울상을 짓다 넋이 나간다. 지금이 저점이란 증권가 진단은 개인들의 '빚더미 투자'를 부추겼단 지적이다.

지난달 말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합친 국내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10조원을 넘어섰다. 9조원대에 머물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실제 지난 10거래일 연속 증가해 10조2962억원을 기록했다. 신용거래융자는 증권사가 투자자에 제공하는 주식매수 자금대출로 증권사와 신용거래에 대해 사전약정을 맺은 개인들이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려 주식을 매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모두 주가 낙폭을 키우는 중에도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늘은 것은 주가가 반등할 것이란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신용거래융자에는 높은 이자가 붙는다. 하지만 주가가 오르면 대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고도 투자 원금 대비 높은 시세차익이 생긴다. 때문에 주가 상승을 전망하지만 투자 자금이 부족한 투자자들이 주로 활용한다.

그런데 기대가 무너졌다. 주가가 빠져 주가 낙폭에 이자까지 덤으로 얹어야 해 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빚내 산 주식 가치가 담보비율 이하로 떨어져 반대매매 집행 대상이 되기 때문에 큰 폭의 손실을 그대로 안을 수도 있다. 반대매매를 해도 빚을 갚지 못하면 그 계좌는 그대로 깡통계좌가 된다.

이렇게 빌린 자금을 증권사의 낙제점과 같은 예측에 기대 상승에 베팅해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레버리지 상품은 지수 움직임의 배를 추종하는 것인 만큼 하락세도 더 짙다. 실제 최근 10여일간 개인이 집중적으로 사들인 레버리지 상품의 경우 해당 기간에만 두 자릿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결국 증권사의 주가 전망이 빗나가면서 이를 믿은 투자자만 낭패를 보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주가 예측 확률과 로또 당첨 번호 확률을 찾는 게 같다는 농 섞인 말이 증권가에 나돈 지 오래다. 로또 번호가 맞느냐, 틀리느냐 반반이라면 주가 예측도 그 정도로 어렵다는 얘기다.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전망이 무의미한 때다. 요즘처럼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주가 지수를 맞추는 건 신의 영역일 정도로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차라리 예측을 않는 게 낫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실망만 안기는 주가 전망 헛발질이 계속될수록 이미 팽배한 애널리스트 무용론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투자자에게도 불행이다. 자성론을 꺼내 투자자 신뢰도를 끌어올릴 계기가 되길 바란다.

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hj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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