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상국(相國)을 지낸 조참(曹參)의 후예다. 할아버지 조등(曹騰)은 환관이었고 그의 아버지 조숭(曹嵩)도 환관이었다. 조조는 어린 시절 학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임협방탕(任俠放蕩·사내다움을 뽐내며 멋대로 노는 것)했다. 따라서 그가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교현의 이 말은 사실로 입증되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30살의 조조는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되어 황건적을 토벌했다. 이 공으로 제남국(濟南國)의 상(相·지방장관)이 되었다. 이후 북방을 장악하고 있던 원소(袁紹)와 벌인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예상을 뒤엎고 대승을 거둬 이름을 천하에 떨쳤다. 이후 조조는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천하를 장악했다. 그는 '간웅'(奸雄)이 아니라 일세(一世)에 뛰어난 인재였다.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누가 명세지재의 그릇을 가지고 있는지 국민들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개 꼬리 3년 묻어놔도 황모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제대로 된 국회의원들을 잘 뽑아야 좀 더 나은 세상이 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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