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EP이 6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2020 국가혁신체계 재설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안경애기자
국가기술혁신체계 토론회
한국 경제가 침체 속에 잠재성장률 1%대 진입을 앞둔 가운데 국가 기술혁신체계 재설계를 통해 성장엔진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정부는 민간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돕는 조연 역할에 집중하고, R&D뿐 아니라 산업·지역·교육정책을 연계한 기술혁신 체계를 완성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장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혁신전략연구소장은 6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2020 국가기술혁신체계 재설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급속한 환경변화와 후발국 프리미엄 한계로 인해 2025년 이후 1%대 잠재성장률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과거와 다른 성장경로 개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과학기술 인력 유출을 막는 적극적 유인제도를 만들고, 과기 분야 이민제도 등 전향적 대응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기술혁신의 성장기여도 높이기 위해 국가 전체 R&D에서 공공 R&D투자 비중을 25%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최적의 국가 R&D 투자규모는 GDP 대비 5.1%, 정부 비중은 28.6% 수준인데 현재 각각 4.81%, 23.3%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기업 R&D 2배 확대를 위한 전략, 정책, 컨트롤타워를 정립하고, 새로운 기술혁신 패러다임에 대응하는 국가 거버넌스 재정립을 위해 최고데이터책임자(CDO) 제도 도입, 과학기술혁신본부 기능 강화, 과학기술혁신 부총리 제도 재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은 "2등으로 올라서는 데는 정부 주도의 효율성이 중요했지만 1등이 되려면 민간의 창의가 중요하다"면서 "정부는 혁신 생태계의 규제 제거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속도와 다양성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새로운 차원의 위험과 다양성 관리가 필요한데, 정부가 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정부가 상세 제안요청서를 제시하는 기존 정부R&D 방식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게 김 원장의 주문이다. 정부는 방향성과 목표만 제시하면서 단편적 과제보다는 부처간 정책 공조와 R&D 프로그램간 연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세계시장이 하나로 연결되고 승자가 독식하는 시대에는 정부R&D부터 교육시스템, 산업정책을 연계하는 데 집중하고, 구멍가게 1000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세계를 뒤흔들 확실한 10개를 제대로 지원해 100배, 1000배로 키우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글로벌 혁신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제조보다 서비스 지향 마인드가 필요하다"면서 "기업과 정부 모두 엔진, 하드웨어에 집착하지 말고 AI를 비롯한 SW 중심의 혁신정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권영섭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R&D의 상품화 과정뿐 아니라 각 부처와 부문이 협력해야 할 지점에서 데스밸리가 없어지지 않는 게 문제"라면서 "R&D와 교육·산업·인프라 등 외부환경 간의 데스밸리 해결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산업 성장 사이클과 구조변화에 대응하는 국가R&D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한계생산성이 높은 산업에 대한 국가 재원투입을 늘리고,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재 KISTEP 인재정책센터장은 "2025년경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인재정책도 전면적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정규교육 과정을 통한 신규 인력양성 중심에서 신산업 전문인력 양성, 해외·여성 인력 활용, 재직자 경력개발, 평생학습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고령세대를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과 일자리 플랫폼,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고, 외국인 국내 이공계 석·박사의 중소·중견기업 진출을 지원하자는 아이디어다.
지역 전통산업 위기가 지역경제·고용문제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역혁신 시스템도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성진 KISTEP 지역정책팀장은 "전략분야 임계 투자규모 확보와 지자체의 자체 R&D 투자 확대 등 지역 맞춤형 종합전략 수립이 미흡하고, 지자체가 혁신을 주도하기 위한 조직과 제도적 기반, 지자체간 협력이 부족하다"면서 "지자체가 지역혁신을 주도하도록 지역에 권한을 이양하고, 지역이 자체 R&D에 일정 비중 이상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상선 KISTEP 원장은 "2020년대에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과학기술이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4차 산업혁명기에는 빅뱅을 유발하는 새로운 과학기술과 신산업의 출현이 예측되는 만큼 이를 위한 국가체계 구축과 생태계 조성, 인재 육성, 기업가 정신 함양 등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정운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