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정부의 ESS 화재 원인 2차 조사결과에 LG화학과 삼성SDI 등 배터리 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배터리와 ESS 화재 간 인과관계가 없다"며 조사단의 발표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ESS의 구조 상 배터리 외엔 화재가 발생할 요인이 없는 만큼 그보단 배터리에 화재가 발생한 인과관계를 입증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사단이 지적한 배터리 결함이 화재의 원인이라면 비슷한 다른 ESS에서도 다 불이 났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여기에 조사단이 잘못된 데이터를 거론하며 배터리 결함을 화재 원인으로 지목했다는 주장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조사단이 지목한 화재 원인이 실은 화재로 인해 발생한 현상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조사대로면 다른 ESS도 불났을 것…데이터도 틀렸다"= LG화학과 삼성SDI는 6일 오후 산업통상자원부 'ESS 화재사고 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 직후 반박자료를 내고 이 같이 밝혔다.
먼저 삼성SDI의 경우 "조사단이 분석한 내용은 화재가 발생한 사이트가 아니라 동일한 시기에 제조해 다른 현장에서 운영 중인 배터리"라며 "조사 결과가 맞다면, 같은 배터리를 적용한 유사 사이트에서도 화재가 발생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사단이 잘못된 데이터를 해석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화재가 발생한 강원도 평창의 경우 '배터리 보호기능이 동작하지 않았다'는 조사단의 주장과 달리 정상 작동했다면서, 실제 화재 발생 3개월 전 안전 범위를 넘는 충·방전 현상이 발생하자 경고와 함께 배터리 거치대(Rack)가 탈락했는데 조사단이 이를 누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령 조사단의 주장대로 전압편차가 크게 발생했더라도 충전율이 낮은 상태에서는 화재가 발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삼성SDI 측은 "ESS 화재의 발화지점은 배터리에서 시작했지만 화재 원인은 다양하다"며 "휘발유도 성냥불 같은 점화원이 있어야 화재가 발생하지 휘발유 자체로 화재가 발생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배터리에서 불이 붙는 것은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며, 배터리에 불이 붙은 인과관계를 입증하진 못했다는 주장이다.
◇"자체 실증시험서 불 안나…조사단 근거는 일반적 현상"= LG화학도 조사단의 발표가 오히려 배터리가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 이유로 "지난 4개월 동안 실제 사이트를 운영하며 가혹한 환경에서 실시한 자체 실증시험에서 화재가 재현되지 않았다"며 "조사단이 발견한 양극 파편 등 증거들은 일반적인 현상이거나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배터리에서도 비슷한 증거들을 발견할 수 있는 만큼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마찬가지로 사고 사업장의 인접 ESS를 봐도 일부 파편이 양극판에 점착되는 등의 비슷한 상황을 발견했지만, 배터리 내부 발화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만약 조사단이 지적한 발화원인이 맞다면 유사 배터리에서도 모두 화재가 발생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LG화학 측은 또 "배터리의 분리막은 표면을 '세라믹 소재'로 얇게 코팅해 안전성을 대폭 높인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은 강한 입자인 Fe(철)도 관통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LG화학은 이를 바탕으로 외부 환경에 의한 발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충남 예산 ESS가 절연(전기를 통하지 않게 하는 것)의 최소 기준치는 유지했으나 화재 이전 점진적으로 절연 감소가 확인됐고, 이로 인한 화재 발생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하나마나 조사로 미래 시장 고사…韓 ESS 시장 역주행= 업계에서는 이번 조사 역시 '하나 마나'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살인사건으로 비유하면 살인자를 찾은게 아니라 살인도구만 증명한 것"이라며 "1년 내내 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키다 친환경 에너지 시장을 고사(枯死)시킬 작정인가"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실제로 세계 ESS 시장과 국내 시장은 정 반대의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북미와 유럽,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의 ESS 시장은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지만, 한국은 3분의 1 이하로 1년 만에 급격히 줄었다. 이어 오는 2024년까지 세계 ESS 시장이 연 평균 20% 안팎의 고공 성장을 이어가는 반면 한국은 제자리 걸음에 머물 것으로 예측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